지난 7월2일 덕양중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조경애 교사의 ’토론하는 수학’ 수업이 진행됐다. 학생들이 대안 수학 교과서인 '수학의 발견'을 활용해 일차방정식 문제를 함께 풀고 있다.

 

″오늘은 우리 모두 ‘히어로’가 되어볼 겁니다. 엑스(x)를 구하는 게 이번 시간의 목표인데, 먼저 퀴즈를 풀면서 시작해볼까요?”

지난 7월2일 경기 고양시 덕양중학교 1학년 3반 1교시. ‘토론하는 수학 수업’이 한창이었다. 조경애 교사는 ‘일차방정식의 활용’ 단원 도입부에서 엑스 값 구하기를 영화에 접목해 설명했다. 4~5명씩 모둠별로 앉은 아이들은 각각 아이언맨과 블랙 위도, 헐크가 되어 ‘미지수 엑스(x)’ 값을 구해야 하는 퀴즈 미션을 받았다. 등호를 기준으로 수식을 이리저리 옮기는 등 활발한 토론이 시작됐다.

조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펼친 수학 교과서에는 연습 문제나 공식들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학생들이 직접 채워야 하는 빈칸이 많이 보였다. 조 교사가 사용한 교과서는 대안 수학 교과서 <수학의 발견>이다.

<수학의 발견>은 지난 2년간 (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38명의 현직 교사 집필진이 만들어 지난 4월23일 펴냈다. 지난해에는 이 교과서를 교실에 적용해본 17개 실험학교에서 1694명의 학생들이 대안 수학을 경험해봤다. 교과서 연구 개발 및 집필에 참여한 이경은 영림중학교 교사는 “2020년까지 중2 및 중3 과정도 출간할 예정이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로 대변되는 수학교육 문제를 대안 교과서를 통해 바꿔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수학, 도대체 정답을 왜 찾아야 해요?”

중·고교 일선 수학 교사들은 “먹어본 적도 없는 소금물 농도를 구하라고 할 때, 대출받을 나이가 아닌데 이율 구하라고 할 때부터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외면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들 입장에서 수학은 ‘왜 풀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는 문제를, 답까지 정확하게 찾아내라고 재촉하는 과목’인 것이다.

이 교사는 “최근 코딩이나 메이커교육을 통해 ‘이과적 사고’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들 교육의 뿌리가 되는 과목은 단연 수학”이라며 “기존 주입식·암기식 교수법보다는 문제 풀이과정 자체를 교실에서 공유·토론해보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풀이 과정 틀려도 주눅 들지 않는 수업

조 교사의 ‘토론하는 수학’ 수업은 도입-교과서 함께 읽기-모둠 만들어 토론하기-풀이과정 공유하기 단계로 이어졌다. 교사가 그날의 단원 목표를 설명해준 뒤 반 아이들이 작은 모둠을 이뤄 교과서 문제를 탐험하듯 풀어나가는 것이다. 조용히 문제 풀며 채점하기 바쁜 여느 교실과는 수업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들 모두 자신만의 논리로 문제 해결 과정을 옆 친구에게 설명하고 공유했다. ‘내 풀이법이 틀린 것이면 어떡하지’라는 머뭇거림은 없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텃밭을 만들 때 필요한 전체 벽돌의 개수가 196개인 거잖아. 사각형은 총 네 개의 변이니까 ‘4x’로 놓고, 귀퉁이에 겹치는 4개의 벽돌을 제외한 식을 세워보면…. ‘4x-4=196’이라는 식이 나오는 것 아닐까?”

모둠 토론 시간에 김하은양이 친구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수학의 발견> 교과서 123쪽 아래의 큰 빈칸에 자신만의 식을 풀어내기도 했다.

조 교사는 ‘수포자’ 없는 수학 수업을 위해 2년째 대안 교과서로 수업하고 있다. 그는 “서술형, 과제 중심 교과서로 진행해보니 아이들이 ‘수식 세우는 논리’가 탄탄해진다. 우리 수업 시간에는 정답을 골라내는 것보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검정 교과서가 정다면체를 다루는 방식은 ‘정의와 암기’다. 면의 개수와 모양, 한 꼭짓점에 모인 면의 개수 등을 표의 빈칸에 일률적으로 채워 넣는 식이다. 정사면체부터 정이십면체까지 평면적으로 배우니 아이들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한데 대안 수학 교과서는 정다면체에 황철석, 석류석 등 광물의 모양과 특징을 대입하게 해본다. 무작정 면의 개수를 쓰게 하지 않고 ‘개념과 원리 탐구하기’ 파트를 통해 ‘석류석 결정이 황철석 및 방해석의 결정과 다른 특징을 두 가지 이상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식이다. 새로운 도형 개념이 나왔을 때 지식을 수직적·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수평적·자기주도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조 교사는 “설령 오답이 나오더라도 아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옆자리 친구들과 다시 이야기해보면서 수식이나 탐구 과정의 오류를 수정하고, 그걸 다시금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빨간펜으로 채점 매긴 뒤 줄 세우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수학자들도 오래 생각하고 공식 만든 거잖아요”

최민기 소명중고등학교 교사도 2년째 대안 수학 교과서를 활용하고 있다. 최 교사는 현재 <수학의 발견> 중3 과정 집필진으로도 참여 중이다. 그는 ‘에라토스테네스’ 등 고대 수학자들이 긴 시간을 들여 연구·발견·증명해낸 이론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암기하도록 가르치는 기존 교과서의 서술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대안 교과서에는 ‘절댓값이 ?2인 수는?’ 등 정답이 없는 문제도 있다. 온전한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일지라도, 해당 질문을 함께 토론하면서 지식을 쌓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교과서는 ‘경직된 모습’이지만, 대안 교과서는 이렇듯 아이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건네며 수학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수포자였던 아이들도 “이번엔 내가 잘못된 질문을 찾아보겠다”며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견고한 기성 지식의 세계를 자신이 무너뜨려 본 뒤 새로 세워보겠다는 학습의욕도 느낀다.

최 교사는 “그 옛날 수학자들도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낸 공식들이다. 개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라며 “한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남이 발견해놓은 지식을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수학일 수 있다. 그걸 지양하고 아이들 눈높이에서 수학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2일 덕양중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조경애 교사의 ’토론하는 수학’ 수업이 진행됐다. 

 

수학·국어 손잡으니 일차함수가 재밌어요

수학 과목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교과 간 주제통합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수업도 있다. 수학과 국어, 도덕, 미술 등 해당 교과 교사들이 손잡고 하나의 프로젝트 수학 수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노변중학교 김신지 교사는 ‘일차함수의 활용’ 단원을 ‘인생 그래프 그리기’로 바꿔봤다. 좌표평면 위 ‘엑스·와이’(x·y) 절편, 기울기 등의 개념을 ‘행복지수’와 ‘생애주기’로 대체해 점을 찍고 그래프를 그려보게 하는 식이다.

지난 2017년 6월16일 노변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인생 그래프 프로젝트-생활 속 함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활동은 수학 ’일차함수’ 단원과 도덕·국어 등 교과 간 주제통합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열다섯 내 인생, 자존감 업(UP)’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김신지 교사 제공

지난 2017년 6월16일 노변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인생 그래프 프로젝트-생활 속 함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활동은 수학 ’일차함수’ 단원과 도덕·국어 등 교과 간 주제통합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열다섯 내 인생, 자존감 업(UP)’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김신지 교사 제공

기존 교과서의 ‘두 점을 지나는 일차함수의 식을 구해보자’라는 질문을 ‘15살의 나와 35살의 나는 어떻게 다를까? 행복지수를 점 찍어본 뒤 인생 계획을 스토리텔링 해보자’로 바꾸어 진행했다. 김 교사는 “‘y=x+50’이라는 수식도 중요하다. 다만 이 식을 왜 풀어내야 하는지 의미부여를 해보는 활동이 있으면 수학 시간에 아이들 눈빛이 살아난다”고 했다.

수업이 바뀌면서 평가도 바꿨다. 현재 중학교 내신에서는 지필평가(60%) 외에 과정중심 수행평가(40%)가 있는데 반영 비율을 연립방정식 프로젝트(15%), 인생 그래프 프로젝트(15%), 활동지 포트폴리오(10%)로 세분화했다.

학생 본인의 자기성찰과 동료 평가 과정 등도 넣었다. 세분화된 과정중심 수행평가를 진행하자 우등생과 열등생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단순히 계산을 잘하면 점수 주는 것이 아니라 인성요소(자존감, 긍정, 소통), 활동지 포트폴리오(정보 처리, 태도 및 실천) 등으로 반영 비율을 배분한 결과다. 지필 평가에서 수학 20점을 받던 아이가, 과정중심 평가에 적극 참여하며 70점을 받으니 성취감도 높아졌다. 김 교사는 “수포자가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어차피 해도 안 된다’는 체념 때문이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의 자존감과 성취도 향상을 위해 공교육 현장에서 교과 간 주제 통합 교육과정을 진행해보면 좋다”고 전했다.

입시만이 지상 목표일 것 같은 고교 현장에서도 즐거운 수학 수업은 가능하다. 전주고등학교는 수학교육 연구학교로 2년 동안 또래 수학 멘토링, 수학 단편영화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요즘 학생들이 관심 갖는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한 학기에 걸쳐 미적분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박희진 교사는 “학기 초 미적분 발생 과정, 미적분의 재미있는 이야기, 미적분을 사랑한 수학자, 수학이 필요한 이유 등 네 개의 대주제를 선정했다. 5분짜리 수학 단편영화를 만드는데, 한 달 단위로 계획서를 함께 써나갔다. 미적분 단원을 협동 속에서 가르치고 배웠다”고 했다. 학기 말에는 ‘전주고 수학 단편 영화제(JMFF)’를 열어 전교생이 영상으로 재현한 ‘미적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박 교사는 “미적분의 발생 과정 등 아이들이 스스로 수학 이론을 연구해 개사한 노래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하고, ‘수학 좀비’라는 콘셉트로 판타지 영화를 찍기도 했다”며 “배움 및 역량 평가를 통해 고교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핵심 성취 기준을 달성하면서도, 아이들이 ‘이 정도면 나도 수학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얻게 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라고 전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44980fe4b048036ea27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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