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안 음바페. 

수십년 동안 옛 노동계급과 공산당의 보루였던 93지역은 지금은 아랍과 아프리카 출신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많은 파리 시민들에게, 93지역은 쇠락한 주택 개발 프로젝트, 범죄, 실업률, 그리고 무슬림을 상징하는 단어다. 프랑스에는 여러 종류의 교외지역이 있지만 이를 뜻하는 프랑스 단어 ‘방리유(banlieue)’는 이민자들로 두드러지는 슬럼을 뜻하는 경멸적 표현이 됐다. 방리유 내에는 세계대전 이후 건설된, 르 코르뷔지에의 브루탈리즘 스타일을 띈 거대한 콘크리트 주택 프로젝트들로 채워진 도시(cité)들이 있다.. 노동자들의 유토피아로 구상됐던 이곳은 (그러나)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 집중된 곳이 되었다. (뉴요커 2015년 8월호)

미국 시사잡지 뉴요커는 프랑스 파리 외곽에 위치한 봉디(Bondy)라는 이름의 지역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아름다운 마을도 아니다.  봉디는 파리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11km쯤 떨어져있다. 파리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거쳐가는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가는 바로 그 길목에 있다. 

5만여명이 살고 있는 봉디는 변두리 빈민가로 알려진, 그런 전형적인 방리유(banlieue)다. 교외 지역(suburbs)으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단어 방리유는 언젠가부터 분열과 배제, 차별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여왔다. 여기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봉디가 속해 있는 센생드니(Seine-Saint-Denis) 주를 비롯한 파리 인근 방리유들에는 아프리카와 아랍 출신 이민자 및 2~3세들이 대거 거주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부는 몰려드는 옛 식민지 주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서민용 아파트를 대거 지었다. 이후에도 파리와 가깝고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민자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프랑스 파리 북동부 센생드니 주의 또다른 방리유인 보비니(Bobigny)의 아파트 단지. 

 

그러나 여러 지표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이 프랑스 사회에 완전히 뿌리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파리 인근 방리유 지역들의 실업률(2017년 기준)은 11.4%에 달한다. 청년 실업률은 무려 23%다. 주민 평균소득은 프랑스 평균에 못 미치고, 젊은층들에게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교육 수준도 낮은 편이다. 인구 중 청년층 비율은 평균보다 높다. 

센생드니 주는 2005년 당시 사소한 사건으로 촉발돼 프랑스 전역으로 번졌던 대규모 시위와 폭동이 시작됐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이 사건은 수십년 동안 시행됐던 프랑스의 이민자 통합 정책의 실패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부각됐다.

올해 초 ESPN은 봉디의 풍경을 전하며 ”고대 프랑스 마을 위에 누군가 소련 동네를 툭 내려놓은 것만 같다”고 표현했다. ”오래된 성당이 남아있지만 색이 바랜 1960년대 아파트 단지들로 가득한 곳.” 프랑스 사회에서 소외된 이민자와 서민들의 도시는 이렇게 음습한 문장으로 묘사된다. 

바로 이곳에서 킬리안 음바페가 태어났고, 그의 축구 커리어가 시작됐다. 

 

이제 음바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할 차례다. 올해 19세인 음바페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프랑스 국가대표 최연소 월드컵 득점자. 1958년 펠레 이후 처음이자 역대 두 번째 월드컵 결승전 10대 득점자. 러시아 월드컵 최우수 젊은선수상. 프랑스 최초 월드컵 우승(1998년) 이후 출생자 중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선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음바페는 10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 높은 기량을 전 세계 축구팬들 앞에 선보였다. 폭발적인 스피드, 침착성, 골 결정력, 테크닉, 어시스트 능력까지. 그 뿐만이 아니다. 왼쪽발과 오른쪽발을 가리지 않고 쓸 줄 알고 좌우 윙포워드와 최전방 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췄다.

이미 그의 걸출한 기량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전문가들조차 이 19세 청년이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이렇게까지 뛰어난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월드컵에서의 돌풍 덕분에 음파베는 어느덧 축구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뒤를 유력한 선수로 거론되는 중이다. 이번 월드컵은 어떤 면에서 ‘축구 황제 대관식’이었던 셈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 마주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6월30일.

 

월드컵 개막 전부터 음바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10대 축구선수로 꼽혔다. 6살때부터 지역 축구팀 AS 봉디에서 훈련을 시작한 그는 10대 초반부터 재능을 인정 받으며 유럽의 내로라 하는 유명 축구클럽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음바페는 ‘빅클럽‘보다는 상대적으로 출전 기회가 많은 팀을 선택했고,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였던 것으로 판명났다. 프랑스 프로축구 1부리그 AS 모나코에서 주전으로 도약하며 2016-17 시즌 26골을 넣었다. 팀 최연소 득점 기록도 갈아치웠다.

모나코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2017-18 시즌에는 리그 최강 파리생제르망(PSG)에 영입(완전이적 조건 임대)됐다. 계약 당시 합의된 바에 따르면 PSG가 AS 모나코에 지불해야 할 이적료는 1억8000만유로(약 2400억원, 옵션 포함)였다. 이적료를 기준으로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선수라는 뜻이다. (음바페는 이번달 1일자로 PSG로 완전이적했다.)

2017년 9월, 나이키 주최로 봉디에서 열린 'Play Bondy Football Festival' 행사장에는 음바페의 얼굴이 담긴 대형 광고판이 걸렸다. 광고판에는 '봉디, 가능성의 도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다시 음바페와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보자. 음바페는 카메룬 출신 부친과 알제리에서 온 모친을 뒀다. 이민자 부모를 둔, 방리유 출신의 국가대표 선수는 음바페 뿐만이 아니다. 폴 포그바, 은골로 캉테, 블레이즈 마투이디, 벤자민 멘디 등도 모두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음바페의 고향 봉디가 속해있는, 93지역으로 불리는 센생드니 주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에 비유되곤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총리는 피부색이나 이민자 출신이라는 이유 만으로 이곳 주민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일종의 ”가택연금”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 실패는 프랑스의 뿌리 깊은 사회 문제로 꼽혀왔다. 인종과 종교, 출생국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종종 국가대표 축구팀 내의 분열로도 나타났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멕시코와의 경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 프랑스는 당시 A조에서 우루과이, 멕시코, 남아공과 만나 1무2패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일례로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발생한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의 태업 사태 당시 무슬림으로 개종한 프랑크 리베리나 흑인 선수들이 공공연한 타깃이 됐다. ‘국가적 정체성’이 부족한 몇몇 선수들 때문에 팀이 분열됐다는 이유에서였다.

2011년에는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는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에 흑인 및 북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발탁 비율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 진행됐다는 내용이다. ‘대표팀에 백인 선수가 너무 적고 흑인 및 아랍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유로 2016 당시에는 유럽 명문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임에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카림 벤제마가 ‘인종 차별’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알제리계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차별을 받았다는 것. (물론 그는 그 이전에 ‘큰 사고’를 친 적이 있다...) 

이민자 부모를 둔 몇몇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지 않는 문제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킬리안 음바페와 방리유의 아이들’이라는 장편 르포기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논란들의 중심에는 사회적 차별의 징후가 담겨있었다. 2010년 태업을 이끈 선수들은 방리유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동료 협박 사건으로 여론에 ‘배드 가이‘로 찍힌 카림 벤제마는 리옹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대표팀 주장이자 니스의 변호사 중산층 가정의 아들인 휴고 요리스는 항상 (국가대표 경기 전) ‘라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프랑스 국가)’를 부른다. 방리유 출신인 벤제마와 프랑크 리베리는 그렇지 않다. (뉴욕타임스 6월7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개최국 프랑스는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을 상징하는 표현은 그 유명한 '아트 사커', 그리고 '블랙(흑인)-블랑(백인)-뵈르(북아프리카계)'였다.

 

조금은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프랑스가 ‘다문화의 성공적 상징‘으로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다. 자국에서 열렸던 대회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따냈던 1998년이다. ‘아트 사커‘의 탄생을 알렸던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아름다운’ 플레이 만큼이나 선수들의 다양한 ‘색깔’로도 화제를 모았다.

20세기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전설적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알제리)을 비롯해 릴리앙 튀랑(서인도제도), 마르셀 드사이(가나), 티에리 앙리(서인도제도) 등 이민자 부모를 둔 선수들이 당시 대표팀을 구성했다. 프랑스의 우승은 축구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일종의 ‘새 시대 선언’과도 같았다. 

그러나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근 가디언은 1998년 이후 벌어졌던 일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정치인들은 프랑스 정체성의 모범적인 전달자나 사회의 고질병을 해결할 마법의 해결책(magic fix)이 되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을 국가대표 축구팀에 지워왔다. 20년 전 ‘블랙(흑인)-블랑(백인)-뵈르(북아프리카계)’ 신화로 묘사됐던, 다인종으로 구성된 지네딘 지단의 1998 월드컵 우승팀이 프랑스의 뿌리 깊은 정체성 문제를 토너먼트 우승으로 단숨에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돌아보면 정치적 어리석음으로 비춰진다.

1998년의 그 ‘무지개’ 팀이 인종 갈등의 위안으로 추켜세워진지 4년 뒤,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팀에 너무 많은 흑인이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던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은 2002년 대선 결선에 올랐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그의 딸인 마린 르펜이 1000만표 이상을 득표해 지금은 국민연합(RN)으로 이름을 바꾼 국민전선(FN)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가디언 7월15일)

프랑스 파리 북동부 센생드니 주의 방리유 라 꾸르느브(La Courneuve)의 아파트 단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월드컵에서의 성공이 ‘마법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뉴욕타임스는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이 거둘지도 모르는 성공이 방리유와 이민자 사회를 둘러싼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 러시아에서 프랑스의 우승이 1998년 우승과 비슷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솔깃한 일이다.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파트릭 비에이라로 구성된 1998 세대는 블랙-블랑-뵈르로 알려졌으며, 새로운 다문화의 프랑스를 대표할 것으로 여겨졌다.

봉디 주민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1998년 (우승) 이후 프랑스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듯, 수십년에 걸쳐 이어진 오명과 멸시를 지워내려면 훌륭한 월드컵 성적 그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젊은 선수들이 잘못되면 사람들은 걔들은 원래 나쁜 청년들이라고 말하고 교외지역을 탓한다.” AS 봉디 단장 장-프랑수아 서너가 말했다. ”그러나 모든 게 잘 되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6월7일)

프랑스 정부는  2024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파리 외곽의 낙후된 방리유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센생드니에 지어질 올림픽 선수촌과 미디어 빌리지는 4500채의 주택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수영경기장, 공원도 리모델링 되거나 새로 조성될 예정이다. 트레이닝, 직업, 학습 기회도 확대된다. ″올림픽은 경제 발전을 이끌고, 지역적 불평등 감소시키며, 지역 고용률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올림픽을 계기로 25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조직위원회의 설명이다. 

킬리안 음파베가 모스크바 서쪽 이스트라에서 훈련을 마친 뒤 자신의 고향 봉디에서 온 젊은 팬들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 2018년 6월27일.

 

음바페의 성공이 그의 고향과 프랑스 사회 전체에 남긴 건 결코 작지 않다. 봉디 주민들은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음바페의 활약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주민들은 프랑스 국가를 목놓아 불렀고, 다함께 ‘프랑스’를 연호했다.

나아가 주민들은 봉디를 포함한 방리유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실빈 토마생 봉디 시장은 가디언에 이번 대회가 ”방리유 전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선사했다고 기뻐했다. 

”음바페와 그의 또래 선수들이 프랑스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 선수들의 출신 지역인, 방리유의 청소년들에게, 그와 같은 선수들은 자부심과 희망의 원천이자 (이 지역을 둘러싼) 고정관념은 틀렸다는 증거다.”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허프포스트 프랑스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월드컵 기간 동안 어떤 정당도 대표팀 선수들의 ‘출신 성분’ 등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선수단 역시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리지도 않도록 조심했고, 모든 선수들이 국가를 따라 부르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선수들은 한 목소리로 애국심을 드러냈다. 이들이 말하는 ‘자랑스러운 나라’는 물론 다양성의 나라다.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프랑스다. 출신지들이 다르지만 우리는 단결되어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똑같은 유니폼을 위해, 우리 나라를 위해 뛴다.” - 앙투안 그리즈만 (독일-포르투갈계)

″우리는 이 위대한 유니폼을 대표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 프랑스 국민들도 이런 대표팀을 가졌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블레이즈 마투이디 (앙골라-콩코계)

″오늘의 프랑스는 다양한 색깔로 가득하다. 출신지가 다른 선수들이 많은데, 그게 바로 프랑스를 이렇게 멋지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프랑스인이라고 느끼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 기쁘다.” - 폴 포그바 (기니계)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4c29d7e4b0e7c958fc8e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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