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 현장과 언론 등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몇 가지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각종 매체와 인터뷰한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는데 각 매체의 논조에 따라 편집되어 인터뷰의 본 의미와는 다르게 전달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워마드/래디컬/터프는 페미니스트인가?’
(2)‘불편한 용기’ 집회는 워마드의 집회인가?
(3)‘생물학적인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생각은?
(4)과격한 표현, 혐오표현으로 한국 페미니즘이 왜곡되고 있는 것인가?

 

워마드/래디컬/터프는 페미니스트인가? 그리고 ‘불편한 용기’ 집회는 워마드의 집회인가에 대하여


우선 워마드, 래디컬, 터프는 정형화되어 있는 단일한 조직, 그룹, 모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도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는 생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이들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집단화하여 명명하거나 이야기를 하면 논지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그룹”에 대해서(‘워마드는 어떠어떠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슈”(오가는 생각과 언행)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또한 ‘워마드는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와 같이 양자택일적인 질문으로 문제를 단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이슈를 입체적, 종합적, 복합적으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불법촬영 규탄집회 ‘불편한 용기’ 측에서는 집회는 워마드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운영진들) 중에는 워마드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용기’에 나선 사람들을 모두 워마드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기 때문에 집회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거나 그저 ‘혐오시위’, ‘폭력집회’라고 단정하고 평가절하해서는 안되며, 불법촬영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불법촬영 및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동일범죄 동일수사, 단속강화, 처벌강화 등의 주장에 동의하며 더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촬영(몰카)을 위해 만들어지는 소형카메라(안경, 자동차 키, 볼펜, 보조베터리, 라이터, USB, 단추, 나사 모양 등)의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부터 제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하며 근본적인 방안은 교육입니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이나 도구로 여기게 만드는 문화를 근절해야 합니다. 초중고 혹은 그 이전부터 성평등 의식을 높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단속이나 처벌 뿐만 아니라 가장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예방으로 교육(성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포함하는 ‘모두를 위한 성평등 교육’)을 사회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생물학적인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생각은?

‘생물학적인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라는 규정은 우선 남성을 참여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왜 ‘남성이 집회 현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라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남성(남성중심주의, 남성우월주의)에 의해서 각종 차별, 억압, 폭력을 당해온 여성들이 남성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을 이해해야 합니다. 집회 현장에서만큼은 안전함을 보장받고 싶다는 심리를 이해하고 반성하며,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안전한 사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이를 ‘남성은 필요 없다’는 주장으로 보며 그 의도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 주장은 즉 ‘남성에 의한 혹은 남성이 대변해 주는 여성인권이 될 필요가 없다’는 표현으로 여성들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강조한 움직임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안타까운 부분도 있습니다. 모든 운동은 더 많은 지지자들을 이끌어내는 것이 성공의 중요한 핵심요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뜻을 함께하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남성’이 아닌 남성중심주의,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 미소지니, 성차별, 성폭력입니다. 즉 차별과 폭력입니다. 성평등은 여성해방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방을 가져옵니다. 성평등은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게도 해방을 가져옵니다. 뜻을 함께 모으는 모두의 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

큰 문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참여 제한과 혐오의 생산/재생산입니다. 참여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여성을 향한 가짜뉴스와 혐오를 만들어 내고 퍼뜨리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장남자가 아니며 결코 남성 성기를 휘두르며 여성들의 공간에서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트랜스젠더들은 화장실, 탈의실, 목욕탕 등 성별이분법적으로 나뉜 그 어떤 공간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장실 이슈는 여성들과 트랜스젠더에게 공동의 이슈입니다. 함께 힘을 합쳐 모두에게 안전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기환원주의적인 기준에 의해서 ‘“여성성기”를 가진 사람만이 여성이다’라는 주장을 하게 되면, 그동안 ‘여성은 성기가 아니다, 여성은 자궁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출산의 도구로 여기지 말라고 목소리 높여온 페미니즘의 역사와 대치될 뿐만 아니라 “남성성기”를 더 우월하게 여기는 ‘남근중심주의’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성기의 모양에 의해 구분될 수 없고 차별당해서는 안됩니다. 여성은 성기가 아닙니다. 또한 외부성기의 모양은 흔히 말하는 “여성성기(vagina)”와 “남성성기(penis)” 둘 중 하나가 아닙니다. “여성성기”와 “남성성기”의 모양도 개개인마다 다 다를 뿐만 아니라 “여성성기”와 “남성성기”가 다양한 형태로 섞여 있는 사람들(간성, intersex)도 많습니다. 외부 성기의 모양으로 단순히 사람의 성별 또는 젠더를 구분하거나 차별할 수 없습니다.

 

과격한 표현, 혐오표현으로 한국 페미니즘이 왜곡되고 있는 것인가?


‘과격한 표현’과 ‘혐오표현’은 다릅니다. 여성들을 억압해오던 남성(남성중심주의,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 미소지니), 국가, 사회, 종교 등 특권그룹과 기득권층에 대한 ‘과격한 표현’은 저항의 언어로 볼 수 있고 원하는 운동의 방식과 효과에 따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신들이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는가는 그 운동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이 평가해가며 실행해 나가야 합니다. 착하고 얌전하게 말한다고 해서 들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과격하게 말한다고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내용도 듣지 않고 비난만 하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혐오표현’은 다릅니다. 혐오표현이란,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양산하고 차별, 폭력, 억압을 만들어내고 공고히 할 수 있는 표현들을 말합니다. 여성들이 그동안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들어왔던 말들을 그대로 남성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미러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미러링의 대상이 남성들이 아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향하게 될 때 이는 원본의 추한 모습을 원본에게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라, 자신이 혐오의 주체, 즉 원본이 되는 것입니다. 성소수자(특히 트랜스젠더 여성과 게이 남성), 난민, 이주민, 장애인, 아동, 청소년, 노년, 가난한 사람 등을 향하는 폭력적인 언행, 비인권인 발언, 가짜뉴스 등은 운동의 언어나 저항으로서의 표현이 아니라 혐오표현입니다. 이는 페미니즘의 사상이나 철학과도 어울리지 않으며 페미니즘 실천과 함께 갈 수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정말 문제라고 인식하고 고쳐야 할 것은 혐오표현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되고 있는 것은 혐오표현이 아니라 남성이나 종교 등 특권그룹과 기득권층에 대한 ‘과격한 표현’이라는 점에 유념하며 현 상황을 대해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물결이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물결들을 이루며 수많은 의제를 다루어 왔습니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의제에 맞게 수많은 운동 방법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미러링은 그런 수많은 운동 방법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미러링은 효과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듣는 사람의 공감 능력이나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서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미러링은 페미니즘의 대표도 아니며 전부도 아닙니다. ‘미러링은 올바른 페미니즘이냐 아니냐’는 질문은 매우 지엽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워마드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워마드는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의 대표가 아니며 대표가 되려고 한 적도 없습니다. 미디어에서 워마드를 페미니즘의 대표격으로 만들어 워마드를 비난함으로써 페미니즘의 가치를 훼손하려 하는 시도들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인식을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그리고 유일한 관점으로 여겨졌던 ‘남성의 관점’이 아닌 ‘여성의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들도 모두 포함되어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하게끔 돕습니다. 또한 여성 뿐만 아니라 그동안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다른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난민, 아동, 청소년, 노년, 가난한 사람 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나 난민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혐오표현’을 양산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가치 그리고 실천과 거리가 멉니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되어 모두가 함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직면하고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확한 정보를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항상 억압그룹에만 속하거나 항상 특권그룹에만 속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억압그룹과 특권그룹을 동시에 인지하고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각종 차별과 억압이 공고히 자리잡고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자신의 역할을 잘 잡아가야 합니다.

여성혐오(미소지니)와 성소수자혐오(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는 다른 소수자 그룹과 연대하지 않아야 할(혹은 못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그리는 평등한 사회의 모습을 공유하며 연대해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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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67feb6e4b0b15abaa4c4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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