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을 느끼는 게 힘들거나, 그 상황을 직면하는 게 힘들어서 내 감정과 상황을 부정하고 부인하기도 한다. 더 심하게는 좋은 면만 부각해서 바라보고 상황을 왜곡하여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괜찮은 척, 아닌 척하는 내 모습이 그대로 유지가 되면 좋으련만, 그 감정이라는 놈은 주인인 내가 아무리 무시해도 기어코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보기 싫은 불쾌한 감정일수록 더욱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감정을 외면한다. 음식, 섹스, 알코올, 쇼핑 중독과 같은 중독 행동들은 감정 회피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회피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았는데 자신의 무능함이 느껴져서 좌절스럽거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긴장감이 높은 상황이라고 해보자.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발표하는데 떨리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보겠지?’라는 생각으로 불안, 우울, 두려움 등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감당하기에 벅찬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며 아닌 척한다. 그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다른 활동에 집중하기도 한다.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고 음식에 몰두하는 식으로 말이다. 혹은 정서적으로 가까운 가족(부모, 배우자, 형제, 연인 등)을 비난하며 불편한 기분을 풀어댈 수도 있다.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사람에게 한심하게 뭐 하는 짓이냐며 건설적인 일 좀 하라고 화를 낼 수도 있고, 맛있게 밥 잘 먹고 있는 사람에게 쩝쩝 거리지 말라며 과하게 화를 낼 수도 있다. 내가 부탁한 일을 왜 계속 미뤄두고 있냐며 당신은 내 말을 중요하게 듣지 않는다고 케케묵은 옛날 일까지 가져와서 타박할 수도 있다. 

고로 내 안에서 발생한 현재의 불편감은 나의 무능함으로 인한 좌절감과 긴장감이 아닌, 상대방의 행동 때문이라고 탓을 돌린다. 나의 무능한 모습을 직면하기 두렵고, 긴장되는 상황을 떠올리기 싫은 것이다. 나의 불행이 저 사람 때문이니, 저 사람의 행동만 바뀌면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빈도와 강도에 있어서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을 부인하고 내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은 똑같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너 때문에 힘들다”라고 싸움을 거는 게 아니라 “나 힘들다”라고 위로해 달라고 하는 게 좋다. 내 안에서 발생한 감정은 내가 책임 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그때마다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런 내공은 손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부인해오던 사람이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 그 감정을 느껴도 된다고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낀 상황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 감정을 품고 있을 내공도 생기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개인상담을 받거나 집단 상담에 참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법을 연습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상대방, 그리고 우리 관계를 망가트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길.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6d48b0e4b0bdd062083a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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