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서울북부교육청 정문에 용화여고 ‘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경기도 수원 한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올해 담임을 맡은 학급의 여학생들과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임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A씨와 학생들, 단 8명뿐이다. 대외적으로는 전혀 다른 간판을 단 ‘비공개 모임’이다. 교사도 포함된 책 읽는 모임이 ‘지하조직’처럼 은폐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 페미니즘이 공산주의처럼 ‘불온한 사상’으로 금기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친구가 ‘니네 샘 페미라매?’ 묻는 거예요. ‘니네 샘 일베야?’라고 묻는 것처럼요. 그러면서 ‘근데 페미가 뭐냐?’고 또 물어요. 저희는 공부해서 알지만, 애들은 페미니즘 잘 몰라요. 보통 ‘메갈’ ‘워마드’ ‘일베’랑 똑같이 봐요. 좋은 시선이 전혀 없는데,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걸 알면 나를 안 좋게 볼까봐 너무 무서워요.”(모임 소속 ㄱ학생) 메갈은 ‘메갈리아’의 줄임말로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의 방식을 그대로 반사하는 ‘미러링’으로 알려진 온라인 커뮤니티다. 워마드가 파생돼 나간 뒤 현재 폐쇄됐다. 워마드는 최근 성체 훼손 등으로 논란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다. 일베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줄임말로 여성, 세월호 등이 대상인 온라인 혐오 정서의 구심점 구실을 하는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다. 페미니즘을 메갈, 워마드, 일베와 등치시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다는 얘기다.

 

10대 여성운동의 화두, 페미니즘 교육 

 

지난 7월16일 저녁 수원의 한 식당에서 만난 ㄱ학생의 말에는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자발적으로 존재를 숨기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들었다. 바로 ‘무지’를 매개로 증폭되는 학교만의 독특한 여성혐오 문화다. ‘페미니즘=워마드=메갈’이라는 인터넷 공간의 교묘한 혐오 프레임이 현실화하는 공간이 바로 교실이다. 인터넷 말고는 아무도 청소년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교육이 부재한 교실에서 페미니즘은 ‘욕설’이 되고, 청소년 페미니스트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2018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스쿨 미투’가 최근 트위터의 해시태그 운동 ‘#청소년페미가_겪는_학교폭력’으로 진화(관련기사 : ‘교실 내 성차별에 집단행동 나선 청소년들’)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청소년페미 해시태그 운동은 학교 내에서 페미니스트 학생들에게 벌어지는 크고 작은 테러와 학교폭력을 근절해달라는 호소이자 저항이다. 구체적으로 학생 대상 페미니즘 교육, 교직원 대상 페미니즘 연수 정례화를 요구하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이 새로 등장한 ‘10대 여성운동’의 화두가 된 것이다.

<한겨레21>은 페미니즘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비극적인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고등학생들에게 ‘페미니즘 인식 조사’를 했다. 가입자가 270만여 명인 고등학생들의 대표적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 ‘수만휘’(cafe.naver.com/suhui)에서 7월22~25일 설문조사를 했다. 참여자 200여 명 가운데 응답이 부실한 설문을 빼고 여학생 108명, 남학생 61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또 이들과의 비교분석 대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받은 남학생들을 별도로 조사했다. 책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생각의힘)를 쓴 최승범 강원도 강릉 명륜고 교사의 도움으로 명륜고 3학년 학생 100여 명에게 설문을 했고, 이들 가운데 51명이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예상대로 성별에 따라 페미니즘 인식 격차가 뚜렷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가 접한 페미니즘은 긍정적이다’라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 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여학생은 20.4%인 데 비해 남학생은 82%에 이른다.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교사가 있는 명륜고는 그 비율이 37.2%로 일반 남학생의 절반 수준이었다.

‘나는 페미니즘이 ○○○이라고 생각한다’는 주관식 응답을 긍정·부정·유보로 분류한 결과를 보면, 교실에 존재하는 ‘두 얼굴의 페미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남학생의 절대다수인 77.1%는 페미니즘을 부정적(정신병, 사회 절대악, 쓰레기, 집단광기, 여성우월주의, 피해망상 등의 답변이 54.1%)으로 인식하거나, 순수한 페미니즘과 변질된 페미니즘을 분리(이론상 성평등주의 현실은 여성우월주의, 본질은 좋으나 심하게 변질돼 일베와 다름없다는 등의 답변은 23%)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학생은 69.4%가 페미니즘을 긍정했다. 여학생들의 언어에선 페미니즘을 여성의 운동이 아닌 모두를 위한 운동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관찰됐다. “잃어버린 여성의 권리를 되찾아 남성과 여성의 조화가 이뤄지는 것” “자신이 여성·남성이라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음을 바라는 사상” 등이다.

 

페미니즘 교육 남학교에선 긍정 평가 60% 넘어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와 페미니즘 교육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가칭) 소속 10대, 20대 페미니스트 등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초중고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 발표 및 정책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2.27

 

일반 학생들과 달리 명륜고 학생은 61.8%가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여성주의를 표방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양성평등을 주창하는 사상” “인간의 자유 권리를 주장하는것, 남성·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인간이라는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보장, 존중을 받으려는 주의”처럼 페미니즘의 본질에 맞게 답했다.

현재 학교 현장을 지배하는 페미니즘 혐오의 근저에는 ‘무지’가 깔려 있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경기도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 남학생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82년생 김지영>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저희 학교 도서관에 <82년생 김지영>이 들어왔단 말이에요. 남자애들끼리 왜 이런 거 들어오냐고, 웅성웅성했어요. 애들끼리 ‘그거 페미책이래, 야 걸러 걸러’ 그랬어요.” <82년생 김지영>을 읽지 않았다는 그는 “김지영이 피해당한 것을 쓴 건데,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당했나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도 가부장제가 나쁜 건 인정하자’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친구들로부터 ‘보빨러’(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을 폄훼하는 욕설)라고 욕먹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설문조사에서 “페미니즘은 쓰레기”라고 쓰고 “페미니즘을 잘 안다”고 응답한 그는, 정작 기자와 한 통화에서는 “정확하게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균형을 맞추는 추”라고 응답한 충남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 남학생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보내주었다. “남초(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자기 여자친구가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글을 올렸다. 페미니즘 책이라며 금기시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이 소설에 ‘한남’(여성혐오를 일삼는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말) 표현이 어디 있으며, 문제 될 내용이 어디 있는가.” 그는 초·중학교 시절 ‘김치녀’ 등 혐오 표현을 즐겨 쓴 일을 “부끄러운 과거”라고 말했다. “시사토론 동아리를 하면서 다양한 기사와 책을 읽다보니 인식이 바뀌게 되더라고요. 특히 여성가족부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많이 깨졌어요. 과자 죠리퐁이 여성 성기를 닮았다고 판매 금지했다, 어떤 자동차의 특정 부분이 성적이라서 판매 금지를 하려 했다는 가짜 뉴스를 다 믿었거든요.” <남성 페미니스트>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등 그는 그동안 읽은 페미니즘 책을 줄줄이 읊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인식 격차는 페미니즘을 접하는 경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을 접한 경로’에 대한 질문(복수응답)에 여학생은 1위가 책(22.2%)과 SNS(22.2%), 남학생은 언론 기사(26.4%)였다. 여학생은 온·오프라인이 조화를 이루는 반면, 남학생은 온라인에 치우쳐 있다. 김애라 이화여대 강사는 “언론 기사는 인터넷을 하다 수동적으로 노출된다. 한국의 미디어가 페미니즘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에 한계가 뚜렷한데, 남학생들은 그게 페미니즘의 전부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여학생들이 페미니즘을 접하는 경로 1위가 ‘책’인 점과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여학생들은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다.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공부한다. 지난해와 올해 여성민우회가 열었던 10대 페미니스트 입문 과정 강의를 했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서울은 물론 강원도 원주, 충남에서도 온다. 내가 질문하면 어떤 여학생들은 학부생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대답을 한다.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지식, 인식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 수준 뛰어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올해 상반기에만 여학생들이 교사나 단체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학교 내 성차별이나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일이 20여 건이다. 김성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지금은 청소년들이 누구를 경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성추행 사실을 공론화해 10여 명의 교사가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른 경기도 평택의 ㅎ고 역시 지난 3월 트위터에서 학생들이 만든 익명 계정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트위터 익명 계정을 운영한 학생 B는 <한겨레21> 전화 인터뷰에서 “‘선생님한테 그런 일을 당했으면 너희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던 선생님이 학생들이 모인 강당에서 공개 사과를 하셨다. 문제 있는 선생님들도 다 바뀌었다. 페미니즘을 모르는 친구가 많았는데 그게 뭔지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저번에 혜화역 시위를 다녀왔는데 학교에서 간 친구가 꽤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출간된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동녘)는 애초 페미니즘 교육 욕구가 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출간됐지만, ‘1020 여성’에게 가장 많이 팔렸다. 동녘 출판사 관계자는 “교사보다 학생이 많이 사서 내부적으로 놀랐다. 오프라인 서점 상반기 매출 자료를 보면 10대 남성은 한 권도 사지 않았는데, 10대 여성은 구매 실적이 꽤 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접하는 경로의 성별 차이가 왜 중요할까. 남학생들이 페미니즘을 독학하는 인터넷 공간은 성차별주의로 물든 지 오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5~35살 남성 1200여 명과 여성 300명을 조사한 ‘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청년층 남성의 성평등 가치 갈등 요인을 중심으로’(2015)를 보면, 인터넷상에서 여성혐오 댓글을 가장 많이 올린 집단은 청소년 남성(27.9%)으로 취업준비생/무직 남성(24.2%), 대학생 남성(23.1%)보다 많았다.

인터넷에서 페미니즘을 접하는 청소년들은 극소수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들이 생산한 페미니즘 혐오 담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전술한 보고서를 보면 대표적 여성혐오 사이트인 ‘일베’의 여성 적대적 게시글과 댓글을 분석한 결과 51개 이상 인기 게시글을 쓴 이는 전체 작성자의 0.2%뿐이고, 51개 이상 댓글을 쓴 ‘헤비 유저’ 역시 전체 이용자의 6.1%에 그쳤다. 여성혐오 글을 온라인에 올린 적 있는 사람의 ‘적대적 성차별주의(Hostile Sexism) 점수’(여성 고유의 성역할을 지키지 않고 남성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을 수치로 측정)는 2.75점(4점 만점)으로 전체 응답자 평균(2.41)보다 높았다. “여성혐오에 매우 공감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HS 점수는 3.02점이다.

명륜고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의 ‘위험한 독학’을 막을 방법이 보인다. 지난해 최승범 교사에게 페미니즘 수업을 들었거나, 최 교사가 페미니즘 수업을 하는 것을 아는 명륜고 3학년 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접한 경로’ 1위가 교사(30.3%)였다. 명륜고는 오프라인(교사·책·친구·토론회) 비중(50.5%)이 온라인(유튜브·언론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SNS·포털 댓글) 비중(49.5%)과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 남학생(오프라인 24.8%, 온라인 74.4%)이 온라인 쪽에 크게 치우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은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20만 청원인을 돌파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 교육부는 1월1일자로 신설된 민주시민교육과에 양성평등 담당 사무관과 주무관을 뒀을 뿐이다. 이들이 다른 업무를 병행하다 양성평등 업무만 전담한 게 최근의 일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원 당시 청와대 답변 내용에 포함된 ‘인권교육 실태 조사’는 올해 하반기에나 실시될 예정이다. 혐오가 지배하는 교실에 절실한 페미니즘 교육 담론을 외롭게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은 전교조 여성위원회와 초등성평등연구회 등 현장의 교사들이다. 초등성평등위원회의 한 교사는 “성평등 교육과 관련해 상반기에 시행된 어떤 공문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스쿨 미투, 즉 학교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할 뿐 공론의 장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청소년이 감당하는 일

 

이번 설문에 참여한 경기도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 여학생은 자신의 ‘작은 포스트잇 행동’을 소개했다. #미투운동을 소개하면서 ‘꽃뱀’ 이야기를 하는 교사에게 “선생님의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현상으로 주입하면 안 된다”고 포스트잇에 적어 교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제가 얘기를 안 하면 더 많은 친구가 그렇게 배우는 거잖아요. 그걸 막고 싶었어요.” 그는 이후 주요 입시 자료로 쓰이는 학교생활기록부에 혹시나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최근 확인한 학교생활기록부에 우려한 내용은 없었단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간의 속앓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2017년 2월16일, 대한민국바로세우기 7차 성평등정책 발표 기조연설)한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외롭게 감당한 경험이다.

이 학생은 <나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의 역사> 등을 읽고 페미니즘을 ‘독학’했다며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페미니즘을 독학으로 배웠기 때문에 전문가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학교에서 배운다는 건 남자건 여자건 다 배운다는 거잖아요. 여자애들도 페미니즘을 잘 모르고 그냥 ‘남혐’으로 생각하는 친구가 많아요.” 페미니스트마저 혐오하는 시대, 학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66a562e4b0fd5c73da7f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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