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저 옷을 입고 내 집에 들어와서 내 부모님 앞에 선다면, 나는 엄청나게 부끄러울 것이다.”

한 남성이 인기 인스타그램 유저의 포스팅에 분노의 댓글을 달았다.

수십 명의 유저가 비슷한 정서를 표출했는데, 이 중에는 인도 여성 이름으로 보이는 유저도 있었다. 이 도덕 경찰들은 우르르 몰려와 “패배자 여성”,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 유저들을 그토록 불편하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

배우 겸 작가인 살로니 초프라(Saloni Chopra)가 입은 흰색 반팔 티셔츠였다.

반팔 티셔츠가 왜?

‘버자이너’(VAGINA)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체 페미니스트에 대해, 혹은 초프라 개인에 대해 욕설을 남기기 위해 찾아온 유저들만 수십 명이었다. 일부 유저들(대부분 남성들이었다)은 ‘페니스’의 사전적 정의를 댓글로 올리며, 만약 남성이 ‘페니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악성 댓글에 반박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앞뒤 맞지 않는 대답이 달리다, 결국 욕설이 날아들었다.

이 단어에 분노하는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혐오감과 수치심만이 유일한 대응 방법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일단 그 남성들은 제쳐두고 생각해보자. 왜 여성들이 그토록 수치스러워했을까?

“공격해온 사람 중 상당수는 분명 여성이었다. 그 여성들은 나를 해치고 싶어 해서가 아니라, ‘내 존엄, 내 신체, 내 자부심’의 규칙 안에 있지 않은 모든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다.” 초프라가 허프포스트 인디아에 설명했다.

“그것은 해로운 일이다. 남성들은 성인이 되어서 자기 어머니처럼 타협하고 입을 다물지 않는 여성은 존중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하든 간에, 즉 “머리를 가리길 원하든, 브라를 하지 않으려 하든” 간에 여성이 서로를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초프라는 말한다.

‘버자이너’라는 단어가 인도 소셜 미디어 유저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배우 스와라 바스카르(Swara Bhasker)는 영화 ’파드마바트(Padmaavat)’의 감독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여성을 “걷고 말하는 버자이너”에 불과한 존재로 다루었다고 항의한 적이 있다.

“여성에겐 버자이너가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인생 전체가 버자이너에, 버자이너에 대한 통제와 순수함 유지에 집중될 필요는 없다. (13세기라면 그랬을지 몰라도, 구시대적 생각을 21세기에도 따를 필요는 없다. 미화할 필요가 절대 없다.)” 바스카르의 서한이다.

바스카르, 초프라, 이 두 사람을 두둔하는사람들에게 많은 남성(과 일부 여성들)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설교했다. 그들은 버자이너 같은 단어들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입밖에 내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굶주림과 동등 임금 등 ‘더 중요한’ 이슈 해결을 위해 싸우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의 수호자로 나선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집요하게 여성 신체를 성애화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에게 신체 일부분을 ‘수치스러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의 가부장적 문화는 버자이너를 약함과 수동성에 연관 지어왔으며, 용기와 결의가 부족함을 암시하는 욕설로도 사용해왔다.

이브 엔슬러(Eve Ensler)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인도에서 무대에 올린 마하바누 모디-코트왈(Mahabanoo Mody-Kotwal)은 ‘버자이너 모놀로그’ 오디션을 보러왔던 한 여성 배우를 기억한다. “그녀는 무대에서 ‘버자이너’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 스승과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라고 계속 말했다.”

코트왈은 초프라의 티셔츠에 대한 반응이 “안타깝다”며, 사람들이 ‘버자이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낼 수 없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든 싫든, 그들은 태어나기 전에 버자이너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코트왈은 페이스북 팔로워와 친구가 5천 명에 가깝지만, 자신은 초프라나 바스카르처럼 공격받은 경험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코트왈은 섹슈얼리티 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을 알고 지냈기 때문이며, 그것이 자신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버자이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서 말하는 것에 도덕적 불안감을 느끼는 건 궁극적으로 ‘교육 부족’ 때문이라고 코트왈은 말한다.

최근 뭄바이의 남녀공학에 초대되어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공연했을 때 교장이 했던 말도 떠올렸다. 코트왈은 16년 동안 인도 여러 도시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무대에 올렸지만, 학교에서 하는 공연은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고등학생들이 연극 도중 서로 쿡쿡 찔러대며 잡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교장은 이 연극을 꼭 공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여학생들 앞에서 한 번, 남학생들 앞에서 한 번 공연하게 되었다. “반응은 놀라웠다. 학생들은 아주 잘 받아들였고, 지적이었다. 우리는 학생들과 섹슈얼리티 이슈를 토론하는 이틀짜리 워크숍을 열기까지 했다. 워크숍에는 남녀학생들이 함께 참가했다.”

어린이들 앞에서도 성기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코트왈은 말한다. “교육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내 손주들은 3살 때부터 버자이너를 버자이너라고, 페니스를 페니스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아이들 앞에서 쓰는 모호한 단어를 절대 쓰지 않았다. 씻어야 하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 내 손주들은 ‘버자이너’, ‘페니스’라는 단어를 쓴다. 우리가 그렇게 가르쳤다.”

버자이너에 대한 악마화와 성애화는 피해자가 학대 사실을 밝히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한 여성이 공연 후 나를 찾아와 포옹했다. 학대를 당했는데 그에 대해 거의 말도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자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 허프포스트INDIA의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88d8bde4b0cf7b00340a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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