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밀집 지역에 붙어있는 전세와 매매 시세 전단.

위신재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물건을 말한다. 비파형 동검과 구리거울은 족장의 지위를 나타내는 위신재이다. 사회학자들은 현대사회의 위신재로 비싼 자동차, 골프채, 명품 가방 등을 꼽는다. 하지만 사치품을 모두 위신재라고 할 수는 없다. 샤넬 가방이 그것을 가진 사람의 신분을 정말로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맥도날드에서 알바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샤넬 가방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위신재를 아무나 가질 수 없게 하는 장치들이 있었다. 신라에서 골품에 따라 집의 크기, 지붕이나 기와나 계단을 꾸미는 장식, 의복과 기물의 소재 등을 제한한 것이 그런 예이다(진골 이하는 당기와로 지붕을 덮거나 겹처마를 만들 수 없고, 물고기 장식을 조각하지 못하며, 수놓은 중국 비단이나 금그릇 은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신재가 금이나 은으로 된 식기, 말, 상아, 숙련노예, 예술작품, 고급 의상 등이었는데, 이런 물품을 선물로 받으면 동등한 물품으로 답례해야 했다. 즉 위신재를 선물받는 사람은 이미 다른 위신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하층계급은 곡물을 화폐로 사용하고, 상층계급은 은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보리가 아무리 많아도 보리로는 은을 살 수 없었다. 그리고 위신재는 은이나 동등한 가치의 위신재로만 교환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위신재는 소수 귀족들 사이에서만 유통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강남 아파트야말로 진정한 위신재라고 할 수 있다. 강남의 새 아파트는 20억원이 넘고, 낡고 작은 아파트도 10억원이 넘는다. 보리로는 은을 살 수 없는 것처럼, 월급을 모아서 이런 아파트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강남 아파트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강남의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거나, 강남에 거주하는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분당으로 이사 가면서 남은 돈을 자녀에게 주면, 자녀는 그 돈에 대출금을 보태어 아파트를 산다. 이런 식으로 강남 아파트는 원래부터 강남에 아파트가 있었던 가족들만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강남 집값을 왜 걱정해야 하느냐는 장하성 실장의 발언이 화제이다. 사실 강남이 아니어도 살 만한 집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경제학자로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진정한 위신재의 출현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신분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위기의식을 갖지 않아도 될까?

당혹스럽게도 우리는 가난을 잘 관리하기만 한다면 신분이 존재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른바 ‘좌파’에 속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그들은 복지제도의 면에서 우리보다 앞선 영국이나 프랑스가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더 심한 신분사회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옥스브리지나 그랑제콜은 사실상 상류계급의 전유물이고, 사회의 최상층은 이 학교 출신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런던과 파리의 최상급 주거지는 강남보다 훨씬 집값이 비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나라들에서는 이런 현실을 긍정하는 사람들을 결코 ‘진보적’이라거나 ‘좌파’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좌파는 자기네 교육제도나 주택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다. 영국이나 프랑스를 모델로 삼는 거라면 진보와 보수의 기준 역시 동일해야 하지 않을까?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b564dfe4b0876eda9aee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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