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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은 언제부터 '쇼미더 지지' 무대가 되었을까?

‘한국 힙합‘에 대한 간단한 비판 중 하나는 그들이 ‘자기 과시‘에 몰두하며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맥락에서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간에는 한국 힙합 가사가 ‘나 (욕) 힘들었어, 하지만 돈을 (욕) 열심히 벌었지, 쟤들은 나보다 다 (욕)(욕)(욕) 랩 못하고, 내 랩은 짱이라서 (욕) 여자들은 다 날 좋아해, 그런데 울엄마 ㅠㅠ’ 정도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예전에 한창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보는 재미가 바로 그들의 ‘감정 과잉‘이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며 상대를 툭 치고는 긴 랩을 내뿜는다. 그게 힙합의 ‘문화’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그 장면이 매우 흥미로웠다. 저들은 진심일까? 연기일까? 저게 힙합의 문화일까? 유병재는 이런 광경을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분노 조절을 가장 잘하는 직업군은 힙합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자기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화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랩배틀 하신 거 보신 적 있나요? 원래 철천지 원수지간이 아니에요. 초면인 경우도 있고 며칠 전에 본 경우도 있고... 그런 분들이 이제 랩배틀만 시작되면...” - 유병재

그런데 그런 비슷한 재미를 국감장에서 종종 느꼈다. 가장 가까운 2017년 국정 감사에도 깔깔거리며 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이은재 의원의 ”사퇴하세요” 발언. 분명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해 국감에서는 원전 이야기도 나왔고 공수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 무턱대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사퇴하세요”라고 말하던 이은재 의원 너무 큰 인상을 남겨서 다른 기억이 다 사라졌던 것 같다.

 

 

″당시 이은재 의원은 교문위 국정감사가 열리던 자리에서 조희연 교육감에 대해 왜 ‘MS 오피스’와 ‘한글 워드’를 구입하면서 왜 ‘공개입찰’을 하지 않고 하필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한글과 컴퓨터와만 계약을 했는가 물으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고함을 지르며 ”사퇴하세요”라고 말했다. 이 해프닝이 더 웃겼던 것은 애초에 ‘MS 오피스‘와 ‘한글 워드‘가 특정 회사에서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공개 입찰’이 불가능하다. ”

올해도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어제도 분명히 많은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는 ‘벵갈 고양이‘와 ‘선동열’이 달구었다. 

 

 

10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18일 사살된 퓨마 사건을 언급하기 위해 작고 귀여운 벵갈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고양이는 작은 우리 안에 갇힌 채 불안에 떨었다. 고양이의 불쌍한 눈을 앞세우며 김진태 의원이 한 주장은 ‘정부가 남북정상회담보다 퓨마가 더 이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퓨마를 사살했다는 일종의 ‘음모론’이었다.

″그날 저녁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눈치 없는 퓨마가 하필 그날 탈출해서 실검(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 김진태

 

이날 고통받았던 것은 벵갈 고양이만이 아니었다. 선동열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감독은 ‘특정 선수가 실력이 부족했는데 뽑혔다’는 의혹으로 인해 국감장에 섰다. 그리고 이날 국감장에서는 ”왜 뽑았냐”는 물음과 ”실력을 보고 뽑았다”는 대답이 끊임없이 오갔다.

 

 

야구가 ‘신성한 국감장‘에 오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아 고양이는 그렇게 우리에 갇힌 채로 국감장에 오르면 안된다) 만약 선동열 감독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청탁의 정황이 있거나 일말의 불법이 있다거나 한 흔적이 있다면 이는 국정감사에서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감장에서 등장한 것은 불법에 대한 증거나 단서가 아니라 그저 “A 선수와 B 선수”의 한해 전 기록표였고, 선수의 경기를 TV로 지켜봤다는 지적이었고 선동열 감독의 연봉이었다. 이 과정에서 질의하는 의원은 선동열 감독의 해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몇 번이나 끊었고 디스전에 오른 랩퍼들처럼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사퇴’ 발언은 또 나왔다.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과를 하시든지 아니면 사퇴를 하시든지 두 길만 남았다는 것만 말씀을 드립니다.” - 손혜원

만약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거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병역이 면제되는 제도에 대해 문제 삼고 싶다면 선동열 감독을 올려세울 게 아니라 관계부처에 이 제도가 옳은지에 대해 답변을 요구하거나 부당함을 따져 물으면 된다.

국감장이 엄숙한 자리에서 서로 예의를 차리며 말을 주고받고 곱게 끝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필요하면 추궁해야 하고 상대가 답변을 회피하거나 거짓을 늘어놓으면 화를 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대체 그들이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으며, 왜 애먼 고양이를 불러다가 쇼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며, 왜 선동열 감독이 저 자리에서 ‘특정 선수를 뽑고 특정 선수는 뽑지 않았냐’고 혼나는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물론 국감장에서 ‘스타 의원’이 배출되는 건 좋은 일이다. 특히 초선의원이나 정치신인들에게 국정감사같은 빅 이벤트는 자신의 이름과 능력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비록 국정감사 자리는 아니었지만 대표적으로 1988년 전두환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사실이 밝혀지며 열린 이른바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은 청문회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됐다.

적어도 몇몇 정치인의 고성에는 과연 정치 권력이 풀어내야 할 문제에 대한 집념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처음 한 두 번은 재밌었는데, 해마다 반복되니까 ‘쇼미더 머니 국회편‘을 보는 느낌이다. 피로해진다. 어쩔 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저들은 아직도 ‘정치인에게는 본인 부고 빼고는 모든 기사는 다 좋다’는 신념을 갖고 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힙합에 본류가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을 따라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 힙합이 변질됐다’같은 주장에는 별로 동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은 그대로 흘러가면 된다.

하지만 국정감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비대한 행정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주어진 국회의원의 특권이다. ‘국감이라는 무대 위에서 스웩넘치며 빛나는 나’가 되기 위한 노력은 부차적이어야 한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beee3ce4b0b27cf47a8c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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