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다. 6년 전쯤 취재차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의 추천을 받아 그해 최고의 청주를 빚었다는 분의 술을 마시러 갔다. 서울 근교에 있는 타운 하우스로 마당에 술독이 잔뜩 있는 가정집이었다.

양조자는 여성분이셨는데 청주 잔에 아주 맑은 술을 떠서 한잔, 사발에 탁한 술 한잔을 떠서 주셨다. 나도 모르게 마시고 ‘와 씨’라며 속으로 나 자신에게 화를 냈다. 이렇게 맛있는 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인생을 낭비했다. 작은 잔에 내준 청주의 꽃향기도 멋졌지만, 막걸리가 정말 충격이었다. 아니, 막걸리가 왜 이리 맛있지???

그 막걸리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그 막걸리는 우리가 마시던 막걸리보다 훨씬 진한 막걸리였다. 가정에서 만들다 보니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청주를 마시고 남은 술밑에 물을 적게 섞어 낸 것이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알코올 도수가 한 10도(보통은 6도) 정도 되었을 것 같다. 김치찌개로 따지면, 맛있는 김치에 돼지고기도 아끼지 않고 넣었으니 따로 감칠맛을 내기 위해 다시다를 넣지 않아도 맛있다.

 

상용 막걸리는 다르다.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아주 단순화해서 생각해보자. 쌀로 밥을 만들고 이 밥에 누룩(요새는 다수가 입국을 쓴다)을 넣는다. 누룩 안에 있는 효소가 쌀의 탄수화물(다당)을 분해한다. 분해한 단당을 누룩의 효모가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이렇게 발효가 끝나면 약 17도 정도의 원주가 만들어지는데, 막걸리는 이걸 물에 희석해 상용 막걸리의 도수(대략 6도)를 맞춘다. 근데 희석한 막걸리는 보통은 맛이 없다. 맛을 내려고 여기에 물엿, 설탕, 아스파탐을 섞는다. 탄산이 부족하면 탄산도 넣는다. 달달하고 시큼하고 톡 쏘는 막걸리가 완성된다. 이게 상용 막걸리를 만드는 쉬운 길이다. 김치찌개에 고기를 많이 넣으면 단가가 올라가니 적당히 넣고 부족한 맛은 조미료로 잡는다.  

보통의 길을 가지 않으면 힘들다. 요새 내 마음속의 슈퍼스타는 해남의 해창주조장에서 만든 12도짜리 막걸리다. 주점에만 가면 ”해창 막걸리 있어요?”라고 물어본다.해창은 감미료를 넣지 않고 단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찹쌀의 비율을 높였다. 우리가 보통 ‘쌀’이라고 하는 멥쌀 20%에 찹쌀 80%를 써서 술을 빚는다. 단맛이 살짝 우러나는 게 그렇게 고급스러울 수가 없다.

고급은 비싸다. 가격은 소매가로 한 병에 1만원이다. 음식점에서 시키면 2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 집의 술을 빚는 양조자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고온 발효를 해서 적당한 선까지 당도를 끌어올린다.”며 ”지금 술 내려야 해서 바쁘니 그 정도로 쓰시라”고 끊었다. 완전 쿨해. 너무 멋져. 다시 한번 반했다.

그러나 나는 이 술을 이제는 아무에게나 권하지 않는다. 전에 한번 친구한테 사줬다가 ”너무 심심하다. 그냥 서울 탁주나 마시자”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삐친 건 아니지만 삐쳤다. ”평생 서울 탁주나 마셔라”라고 하려다가 축복의 말 같아 그만 뒀다. 평생 탁주만 마시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게다가 서울 탁주는 서울 탁주의 맛이 있지 않나? 등심 먹고 돼지갈비 먹는 느낌? 풀코스 불란서 요리를 먹어도 치킨 배는 따로 있는 느낌? 

최고의 막걸리는 저마다 다른 법이지만, 어째서인지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전통의 송명섭 막걸리를 많이들 꼽았다. 송명섭 막걸리는 막걸리 계의 평양냉면으로 유명하다. 종종 가는 한국술 주점 ‘산울림 1992’의 홍학기 사장은 ”송명섭 막걸리는 인생의 막걸리. 가장 드라이한 막걸리”라며 칭찬이 자자했다. ”드셔보셔야 해요”. 맞는 말이다. 여기서 은은한 누룩취가 어쩌고저쩌고 해봐야 안 마셔보면 모른다. 한겨레의 미식 스페셜리스트 박미향 선배 역시 송명섭 막걸리 파다. ”그 드라이한 맛이 너무 좋아”라며 ”송명섭 막걸리가 계속 팔려서 장인의 기술이 후대에 계속 전수되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그는 스파클링 막걸리, 이화백주도 자주 찾는 편인데, ”탄산이 주는 독특한 풍미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막걸리 얘기를 할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한국농수산대학교 최한석 박사는 ”대중이 단맛을 선호하는 건 사실이다. 기술적으로 천연의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라면서도 최고의 막걸리를 꼽아 달라는 요청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특성이 달라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얼마 전 막걸리 전쟁이 터졌다. 백종원의 골목 식당에 등장한 막걸리 양조자 박유덕 씨의 고집과 음식 사업가이자 방송인인 백종원 대표의 솔루션이 방송에서 부딪혔다. 여러 쟁점이 있었지만, 박 사장이 만든 ‘밍밍하다’는 막걸리의 맛을 둔 호불호가 문제의 본질이었다.

취재해보니, 백 대표가 원하는 맛의 캐릭터 중 하나는 ‘당도‘였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선택했을 정답이다. 박유덕 사장은 백 대표의 솔루션을 받아들이고 결국 첨가제를 넣었다. 그렇게 달지 않은 막걸리는 ‘맛이 없다‘, ‘썩은 식혜 같다’는 냉혹한 평가를 듣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방송의 덕인지 맛있어진 막걸리 탓인지 매출이 8배가 늘었다고 한다. 정말 잘 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용감한 막걸리 딱 한 번만 마셔보고 싶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b6ebe0e4b0876eda9cd5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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