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더운 줄 모르겠더라. 관측이 시작된 111년 만의 폭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는 긴급재난문자에도 더위는 남들 얘기였다. 사람의 체온을 훌쩍 넘겨버린 이례적인 폭염이기에 에어컨은 상시 풀가동이었고, 어둑어둑한 새벽녘 출근버스 올라 깜깜한 밤이 돼서 집에 돌아오니 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여름이 끝나고 받아본 전기요금은 기억날지언정, 올해 더위는 잘 기억나질 않았다. 뙤약볕은 한반도 전체를 뒤덮었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바람은 불지 않았다. 얼마나 달랐으면 누군가는 직접 체험을 할 정도였을까.

인천퀴퍼가 있던 날, 나는 그곳에 없었다. 소식지회의 참석차 친구사이 회의실에 머물고 있었다. 인천퀴퍼와 겹치는 게 맘에 걸렸지만 그래도 서울 근교에서 개최하는 행사니, 여느 지방과는 달리, 시청광장에서 하는 것과 비슷하겠거니 하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들려오는 비보에 애태울 수밖에 없었다. 무대 설치가 무산되고, 축제 트럭이 훼손되고, 혐오세력에 둘러싸여 한 걸음조차 떼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트위터와 페북 등을 통해 전해오면서 내 생각이 참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쩜 이리 무심했을까라는 자책과 함께, 다시 한번 내가 혐오의 폭염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어느 곳이든 같은 바람은 없었다. 성대결이라는 새로운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퀴퍼도 큰 홍역을 치렀고 지역퀴퍼들은 여전히 커다란 혐오속에 행진을 이어갔으며 섬돌향린교회는 이단몰이 속을 헤쳐가고 있다. 다른한편에서는 인권위원장, 여가부장관, 헌재 재판관 등의 후보자들이 동성애가 아닌 동성애혐오에 대한 반대를 내세웠으며, 소소한 퀴어커플들의 일상을 다루는 유튜버(아프리카BJ)가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온 세상에 뙤약볕이 저리 내리쬐건만 느끼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 어느 곳에선 혐오세력을 조롱하고 흥을 내어 춤추며 거리를 거닐지만, 어디에선 무사히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고 느끼는 곳도 있다. 비단 지역뿐만이 아니다. 어떤 이는 노래로 세상에 울분을 토하고 어떤 이는 귀를 닫고 모른 척하기도 한다. 커밍아웃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도, 없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이도 있다. 서로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이루는 과정도, 이르는 결과도 다르다. 대결이라기 보단 제각각인 것이다. 체험해본 들, 서로를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에어컨의 찬바람은 다른 이의 찜통더위도 머리 속에서 잊게 해준다. 지금의 안락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큰일이 있고 나서야 알게 된다. 지난 대선토론이 끝나고 나서야 모두들 한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만 더 퀴어함을 지닐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 모두들 기억해 줬으면 한다. 올해의 여름에는 인천 퀴퍼가 있었다고, 폭염만큼이나 잔인한 날이었다고.

글: 아론(친구사이 소식지팀)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nae-mam-gatji-aeun-saram-saiui-gimdaeri-ep4-sabunhalgwa-chinsegwon_kr_5bd2b82fe4b0b7cd198dbc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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