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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랜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직장 동료들에게 이야기한 이유

나는 1992년 7월 10일에 데미시아 앤 몬토야라는 이름의 건강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체중은 4킬로그램이었다.

내 몸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정확히 몇 살 때 깨달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았던 때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때 나는 스커트와 드레스, 핑크색, 바비 인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파란색 농구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싶었다. 스포츠를 하고, 레고를 만들고, 공룡을 갖고 놀고 싶었다.

나는 그저 남자아이가 되고 싶어하는 어린 여자아이는 아니었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내게 나는 남자아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남자아이가 되는 생생한 꿈을 꾸다가 깨서 거울을 보며 믿을 수 없어하곤 했다. 내 몸 밖으로 기어나와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다. 아무도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이런 감정들을 억눌러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1년 전에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했다. 처음으로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아주 남성적인 옷을 입었다. 가끔 남성으로 오인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부정하는 상태였다. 나는 성전환 절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생각만 해도 무서워졌다. 그때 내게 정보나 롤 모델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전환을 일찍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앰허스트의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수의과 학사를 따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이 곳의 기숙사에는 LGBTQIA/지지자 전용 층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살면 좀 더 편하겠다 싶었다. 첫 날에 나는 LGBTQIA+ 커뮤니티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각기 성전환의 다른 단계에 있는 트랜스젠더 남성들이 있었다. 한 명은 자신의 성전환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했고, 나는 곧 그를 보며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2학년이던 2011년 가을에 나는 뭘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커밍아웃을 또 해야 했다.

처음에는 학교 친구들에게만 말했다. 대부분 전혀 놀라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이름과 성별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바꿨더니 엄마가 보고 바로 전화했다. 나는 남성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고, 엄마는 ‘난데없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등의 말을 하긴 했지만 곧 이해했다. 반면 아빠는 내 전환을 받아들이는데 몇 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엔 나를 아들로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성전환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색한 기간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 옛 이름이나 여성 대명사를 쓰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칼에 가슴을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내 옛 삶을 뒤로 하고 ‘대미언’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2012년 초에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작했다. 호르몬이 자리를 잡아가자 목소리가 깊어졌고 근육량이 늘어났다.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다. 한두 해가 지나자 나를 여성으로 보는 사람은 없어졌고 나는 내가 되어야 할 존재, 즉 남성이라는 기분이 정말로 들기 시작했다.

커밍아웃하고 1년 뒤, 대학교 1학년 때 상체 수술을 받았다. 고맙게도 대학교 보험으로 커버가 되었고 내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곧 나는 시스젠더 남성으로 간주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기분이 좋았고, 아무에게도 내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커뮤니티 내에서는 ‘스텔스’(stealth)라고 불리는 삶을 살았다. 나는 그저 ‘보통’ 남성의 삶을 살고 싶었다. 끊임없이 질문과 비판을 받고 싶지 않았다.

2014년에 대학을 졸업했고 다음 해에 전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모든 게 잘 풀려가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진짜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전환을 시작한지 6년이 지난 2017년, 만 25세이던 나는 또 커밍아웃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트랜스젠더 남성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했다.

인스타그램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팔로워가 많지 않았지만 전국 커밍아웃의 날에 포스팅을 하자 곧 많아졌다. 전세계 사람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 조언을 구했고, 내 이야기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긍정적 피드백을 보며 나는 내 이야기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고, 마지막 과제에 도전할 힘을 얻었다. 그건 직장에서 내 과거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나는 2년째 대학의 동물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일 다른 남성들과 라커룸을 같이 썼다. 아무도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몰랐고, 나는 그걸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성전환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재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또한 동료들이 알게 되면 나를 다르게 대하고, 승진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도 두려웠다. 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전체 공개였기 때문에 알게 되는 사람들이 몇 명 생겼다. 루머가 퍼지지 않을까 걱정되었고, 만약 누가 알게 된다면 나를 통해 직접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소셜 미디어에서 커밍아웃하고 나서 몇 달 뒤, 나는 관리직으로 승진했고 황홀할 정도로 기뻤다. 수습 기간에는 침묵을 지켰지만, 끝나고 나자 나는 다양성과 포용성 사무실에 가서 70명이 일하는 우리 부서에 어떻게 커밍아웃하면 좋을지를 의논했다. 우리는 ‘직장에서 진정한 모습되기’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서 매분기마다 열리는 부서 회의 때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불안했고, 목소리가 떨렸고 손에서 땀이 났다. 내가 말을 마치면 다들 뭔가 속닥거리고 방안을 둘러볼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프리젠테이션을 끝까지 마치자 모두 기립박수로 응답했다.

질문이 쏟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고 또한 기쁘게도 마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내 아래의 직속 직원들은 여전히 나를 존중하고, 라커 룸에서 나를 다시 보는 사람도 없다.

대학교에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고 7년 뒤 직장에서 커밍아웃했다. 직장에서 커밍아웃하고 난 뒤 다양성과 포용성 사무실은 다른 행사에서도 연설해 달라, 대학교의 LGBTQIA+ 위원회에 가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식을 높이고 내가 진정한 내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해준 커뮤니티에 은혜를 갚는 기분은 정말 끝내준다.

진정함과 가시성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내가 자라나면서 갖지 못했던 롤 모델이 되고 싶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 돕고 싶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e54291e4b0769d24cb9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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