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숨진 채 발견된 철거민 박준경씨가 남긴 유서.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건축 지역에서 30대 남성이 어머니와 함께 세 들어 살던 연립주택에서 쫓겨나와 빈집과 거리를 떠돌다 끝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달라’는 마지막 바램을 유서에 남겼다.

서울 마포구청과 마포경찰서, 빈민해방실천연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 아현동의 한 단독주택에서 10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박준경(37)씨는 지난 9월6일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그뒤 박씨와 어머니는 한 지인의 집에서 생활했지만 방이 너무 작아 함께 잘 수는 없었다. 박씨는 밤이 되면 철거구역에 있는 빈집을 찾아 잠을 청했다. 빈집에는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닥은 냉기를 품었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그것만해도 다행이었다. 너무 추울 때는 가끔씩 찜질방에서 몸을 녹였다.

빈집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씨가 재건축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현2구역 재개발조합 관계자와 철거용역들은 지난달 30일 박씨를 집에서 끌어냈다. 빈집에서 쫓겨난 날, 박씨는 어머니를 만나 용돈 5만원을 받고 홀로 떠났다. 박씨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지난 1일이었다. 박씨와 어머니는 이날 ‘개인용품을 집 앞에 맡겨 놓을테니 찾아가라’ 등의 문자를 마지막으로 주고받았다.

박씨의 흔적이 다시 발견된 것은 이틀 뒤였다. 서울 마포구 망원한강공원 관리사무소 직원은 3일 오전 11시께 박씨가 공원에 두고 간 신발과 옷, 그리고 유서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한강경찰대는 4일 오전 11시35분께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박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그의 주검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가족들은 장례식에서 영정으로 쓸 사진을 구하지 못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박씨의 친구들에게 휴대전화로 찍은 아들의 사진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결국 박씨의 주민등록증에 담긴 사진이 그의 영정사진이 됐다.

살던 집에서도, 빈집에서도 쫓겨나 결국 세상을 떠난 박씨의 이야기가 알려진 4일,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마포 아현2 재건축 지역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공개된 박씨의 유서에는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저는 이대로 죽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전철연 회원과 고생하시며 투쟁 중이라 걱정입니다”라며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우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나와 같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박씨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내 어머니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유서에 “하루가 멀다고 야위어 가시며 주름이 느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니께 힘이 되어 드려야 했는데 항상 짐이 되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못난 아들 먼저 가게 되어 또 한번 불효를 합니다. 어머니께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며 항상 감사하고 사랑했습니다. 또 제가 아는 사람들도…“라고 적었다.

어머니도 아들을 잊지 못했다. “우리 아들 하나, 외아들. 나의 보물 나의 전부예요.”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박씨의 어머니는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서른 살부터 혼자 키우면서 나의 활력소였고 내 힘이었고 내 꿈이었고 나의 전부였는데, 내가 임대아파트가 뭐가 필요해. 내 아들만 살려주면 돼.”

박씨와 어머니가 머물던 집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이었다. 두 사람은 강제집행이 될 것을 알았지만 다른 곳으로 떠날 여유가 없었다. 박씨의 어머니는 ‘한겨레’에 “10년동안 지역에서 살아와 이곳이 삶의 터전이었다. 다른 곳에 가서 살기가 힘든데 한푼 이주비용도 없이 일방적으로 아내려고만 해서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떠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희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대표는 “용산참사 10주기를 한 달여 남긴 시점에서 발생한 철거민의 죽음은, 여전한 살인 개발이 불러온 사회적 타살이자 국가폭력이다”라고 말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인허가권이자, 관리, 감독권자인 마포구청이 살인적인 강제철거를 방치한 1차적 책임이 있다”라고 비판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은 서울 지하철2호선 이대역과 아현역 사이에 낀 역세권 지역이다. 약 6만5500㎡ 면적에 2357가구가 거주했었다. 하지만 2004년에 아현뉴타운지구 개발기본계획이 승인됐고, 주민들 요구로 뉴타운 존치지역으로 지정됐다.

7년이 지난 2011년에는 1419세대 규모의 지상 25층, 지하 5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지기로 결정됐다. 2016년부터 이주가 시작됐으며 지난해 8월 이후 30차례 이상의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건축조합은 사업시행 인가 조건에 포함된 ‘강제집행 사전 통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때문에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거주자의 주거권과 인권 보호를 위해 서울시가 운영중인 ‘인권지킴이단’이 퇴거 과정을 몇차례 지켜보지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일 마포구에 “사업시행자(조합)가 인도집행이 이뤄지기 최소 2일전(48시간)전에 집행일시를 해당 자치구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사업시행 인가 조건을 계속 미이행하고 있다”며 “인도집행시 지속적으로 인권지킴이단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바 공사(철거) 중지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통보해주시기 바란다”라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합 쪽에서 통보한 시간보다 일찍 강제집행을 하는 바람에 인권지킴이단이 제대로 현장을 지켜보지 못한 일이 계속 있었다. 인권지킴이단이 지켜보지 못한 때에 폭력 행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재 경찰에 수사의뢰를 해놓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박씨와 어머니가 쫓겨나온 9월6일에는 ‘인권지킴이’가 있었지만, 강제집행 자체를 피할 수는 없었다. 빈집에 머물다 쫓겨나온 지난달 30일에는 ‘무단침입자’ 신분이었기에 별다른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지켜지지 못했던 박씨는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07bf7be4b0fc236111dc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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