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이종대씨는 어려서부터 서울 명동에서 구두 기술을 배웠다. 엘칸토 공장을 거쳐 1997년 탠디에서 일했다. 제화공 80명이 0.5평 자리에 앉아 수제구두를 만들었다. 공장장과 개발실장이 현장을 돌며 하자가 나지 않도록 감독했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수제구두의 인기가 좋았다. 한해에 건물이 하나씩 올라갔다. 1997년 외환위기가 지나고 2000년 2월이었다. 회사가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도급계약서였다. 구두 한켤레당 단가를 계산해 도급비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4대 보험과 퇴직금, 수당이 사라졌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요구해 세금까지 3.3% 내야 했다. 거부하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7월까지 일하다 몸이 아파 그만둔 후 성수동의 작은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 정부에 금리인상, 금융사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등 6개 조항을 요구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실업률이 치솟고,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며 항의한다. 그녀는 고위 관료에 의해 협상장에서 쫓겨난다. 갑수의 아내는 명예퇴직 신청서와 비정규직 전환 동의서를 받는다.

경제국치일 IMF 협상에 따라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이 만들어졌다. 지난 10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변화가 일터를 덮쳤다. 정규직 자리를 계약직, 파견직, 하청, 용역, 도급, 특수고용이 차지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비정상이 정상을 몰아냈다.

얼마 전 법원은 종대씨와 동료들이 낸 소송에서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탠디의 노동자라며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오늘도 탠디 노동자들은 도급으로 일한다. 8년간 최저임금이 2배 가까이 올랐지만 공임비는 동결됐다. 20만원짜리 구두 한켤레에 6500원, 40만원짜리는 7000원을 줬다. 정기수 회장 일가는 120억원을 배당금으로 챙겼다. 분노한 제화공들이 탠디 본사에서 16일간 농성을 벌여 공임비 1300원 인상에 합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신분은 벗어나지 못했다.

IMF 20년.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가 됐고,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다. 촛불을 들어 불의한 정치권력을 끌어내렸지만, 보수언론을 등에 업은 부정한 경제권력은 건재하다. 최저임금을 올린 대신 상여금과 수당을 빼앗았고, 탄력근로제로 과로사를 부추긴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거래는 털끝 하나 손대지 못한다.

다양한 업종의 비정규직 대표자 100명이 “이제 비정규직 좀 그만 쓰자”며 청와대, 법원, 국회를 찾아다녔다. 불평등의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도 있지만,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비정규직과 사회단체도 함께한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임종석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만의 정부가 아니”라는 조국 민정수석에게 묻는다.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사장님 100명과는 호프잔을 부딪치는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대표자 100명이 <국가부도의 날>을 함께 보면 좋겠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불평등 사회를 공정한 나라로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밤늦도록 토론하면 좋겠다. 민주노총 소속이 많아서 안 된다고 하진 않겠지?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05de4be4b07aec5751ae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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