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결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를 ‘신냉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그 정도는 아니라는 이도 있지만, 양쪽 대결이 상당 기간 지구촌 질서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2차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지속한 미국-소련 냉전과의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상대가 중국·러시아 둘이라는 사실이다. 군사 충돌을 상정할 경우 무기 체계와 전략·전술이 훨씬 복잡해진다. 실제로 미국은 이를 염두에 두고 폭넓게 대비하는 조짐을 보인다. 전장이 육지와 바다, 하늘이라는 전통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사이버·우주·경제 등으로 넓어진 점도 이전과 다르다. 사이버전은 이미 상대국 대선 개입 등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대중국 무역·경제 전쟁을 최우선 대외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주 대결과 관련해서는 미국 정부가 기존의 공군 우주사령부를 확대해 2020년 우주군사령부를 만들 계획을 최근 밝힌 바 있다.

군사 전략 면에서 신냉전 징조로 해석되는 조처는 최근 미국의 일방적인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이 조약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중·단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을 폐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탈퇴 이유로, 이 조약이 중국 미사일에 대한 대응을 빠뜨리고 있으며 러시아가 새 미사일을 개발한 것을 꼽는다.

이 조약을 뛰어넘어 러시아·중국을 압도할 군사력을 구축하려는 게 미국의 의도다. 미국은 이미 미-러 전략무기감축협정(스타트2)을 우회해 큰돈을 들여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위부터 11위까지 나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쓴다. 미국 의회도 최근 군사력 평가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 힘의 우위를 발휘하려면 국방비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러시아는 지난 9월 병력 30만명과 장갑차 3만6000대, 항공기 1000대 이상을 동원한 2차대전 이후 최대의 ‘보스토크 2018’ 훈련을 극동지방과 시베리아에서 실시했다. 이에 맞서 다음달 나토는 31개국이 참여한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트라이던트 정크처’ 훈련을 동·중부 유럽에서 했다. 서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도 최근 중·러와 미·일 등의 합동훈련이 이어진다. 미국과 중국 전함이 거의 스쳐 지나가는 일도 일어났다. 미국과 중·러 사이 무력시위가 일상화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핵을 가진 나라들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과거 냉전 시절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직접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지역 재편 시도, 위력 과시, 국지 도발, 대리전, 제한전쟁 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먼저 떠오르는 무대는 예나 지금이나 중동이다. 최근 가장 특징적인 양상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과 손잡고 주도하는 대이란 전면 압박의 강화와 터키의 친러 행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으로 미국에 공군기지를 제공하는 터키는 최근 러시아제 방공 시스템을 도입하고 여러 미국인을 체포하는 등 미국과 거리를 벌리고 있다. 시리아와 이란, 쿠르드족 문제에서도 미국보다 러시아 쪽 입장에 가깝다. 흑해를 가로질러 러시아와 터키를 잇는 가스관의 해저구간이 최근 개통한 일도 돋보인다. 이란·시리아와 공동전선을 구축해온 러시아에 큰 힘이 되는 호재다. 중국도 중동 지역 현안에서 미국보다 러시아와 손잡고 영향력 확대를 꾀한다. 미국·사우디·이스라엘 대 러시아·중국·이란·터키라는 대치선이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이런 구도 자체가 신냉전 성격을 갖는다.

두번째 주 무대는 남중국해와 남태평양이다.

남중국해를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려는 미-중 갈등은 장기전 양상을 보인다. 미국은 과거에 해온 것처럼 ‘개방과 자유’를 강조하며 해군·공군·항공모함 등을 운용하지만, 중국은 이미 해안과 섬들을 연결해 군사력을 강화한 상태다. 미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매개로 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동남아 나라들은 신중하다. 미국과 손을 잡으면서도 대중국 정면충돌은 피하겠다는 모습이다. 동남아 나라들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바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큰 흐름은 중국 쪽으로 기울 소지가 다분하다. 필리핀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중국과 필리핀은 최근 관계를 격상시키면서 남중국해에서 자원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남중국해 아래쪽의 남태평양 섬나라들을 둘러싼 미-중 경쟁은 11월17~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회의를 계기로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와 함께 섬나라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여러 해 동안 이 지역을 방치하는 사이 중국은 경협 등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왔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가장 치열하게 대결이 이뤄질 분야는 무역·경제다.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지난 1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 3개월 휴전’ 합의가 이뤄졌지만, 협상이 무난하게 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 쪽 협상 책임자로도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가 임명됐다.

미국은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이고 중국의 무역 관행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서, 중국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 미국에 도전할 수 없게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중요한 목표가 중국의 산업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의 폐기 또는 좌초다. 중국은 이 전략을 발판으로 건국 100돌을 맞는 21세기 중반에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세계 1위 나라)을 이루려 한다. 중국이 이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두 나라의 기본 입장은 아펙 회의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당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대중국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던 10월4일 허드슨연구소 연설의 기조를 이어갔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비판하면서 미국의 ‘오만과 편견’을 거부한다고 했다.

미국 일극 구조로 출발한 냉전 이후 세계 질서는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계기로 재편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재편 전략은 미국 우선주의(트럼프 정부)와 아시아 재균형(버락 오바마 정부)이라는 말에 압축돼 있다. 미국이 바라는 대로 재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모순이 더 축적되면서 지구촌 질서는 격렬한 충돌·붕괴 시기를 맞을 것이다. 이미 냉전 해체기와 2차대전 때 그런 경험을 했다. 주기가 대략 40년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냉전 종식 이후 40년이라면 2020년대 초반부터 2030년대 초반이 된다.

지금 미국의 재편 시도는 난항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이 허술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굴복시키는 게 핵심 목표라면 그것에 맞게 일관된 전략을 세운 뒤 많은 나라를 끌어들여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는 무리하게 이라크를 침공했던 조지 부시 정부보다 더 일방적인 모습을 보인다. 동맹국과 거리가 멀어지고 국제 규범에서도 충분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동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장기 대결을 뒷받침할 달러 패권의 지속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란 제재는 한 시금석이다. 달러 아닌 다른 통화로 이란 석유가 거래된다면 달러 패권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미국이 많은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신냉전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중국의 무역 관행을 바꿔나가면서도 협력을 모색하는 쪽이 충돌이나 붕괴·혼란보다는 낫다. 중국 또한 자신의 길만 고집하고 대외 확장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태도가 유지·강화된다면 많은 나라가 반중국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될 수도 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0734cce4b0a6e4ebd9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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