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망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추모 행사와 부고 기사들은 예상대로 고인의 점잖은 겉 행세만 다루었다.

옷을 잘 차려입고 친근하게 행동했던 부시는 무분별하게 전쟁을 벌였고, 인종차별을 부추겼고, 미국인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연방 검찰에 반발했고, 자기가 연루된 범죄를 덮기 위해 범죄자들을 사면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랍시고 교도소 국가의 토대를 닦았고, 그로 인해 젊은 게이 남성들 한 세대가 불필요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갔다. 그리고 지배 계급의 타락에 대한 모든 규제를 없애는데 외곬수처럼 파고 들었다.

워싱턴 D.C.는 망자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 부시에 대해 좋은 기사만 쏟아지고 있고, 그가 저지른 온갖 나쁜 짓들을 언급이라도 하면 편협하고 유치하다는 비난이 돌아온다.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정실 인사들을 사면해주고, 맹렬한 인종차별을 했던 부시였음에도, 대해 최근 며칠 동안 ‘고결하다’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물론 이런 기사들은 ‘부시에게도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들은 질병과 범죄에 가까운 도외시로 죽어가는 친구들을 본 사람들에게 부시가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고 나름의 고생을 했다는 걸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라크의 유령에 밤마다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 형제, 어머니를 둔 사람에게 부시가 개인적으로는 영웅이 아니었느냐고 묻는다.

래리 커트와 키스 잭슨의 가족에게, 애니타 힐에게 이들은 부시가 품위있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느냐고 묻고 있다.

이는 워싱턴 D.C.의 미디어가 많은 이들의 미움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다루는 방식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물론 트럼프의 개인적 행동은 형편없다. 미디어는 트럼프의 정책 목표보다는 그의 개인적 실수를 훨씬 더 자세히 다룬다. 새벽 3시에 화를 내며 올린 트윗은 온갖 뉴스에 등장하지만, 대 중국 정책의 내용(혹은 미비함)은 대부분 무시된다.

이번 주에 워싱턴 기성 세력 중 누구도 부유층의 세금을 엄청나게 깎아준 대통령이 부시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는 것이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아마 고 존 맥케인 상원의원을 모욕한 사람과 동석하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화당원들, 공화당을 유지시켜주는 보수적 미디어는 트럼프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덜 무신경하고 보다 예측 가능하길 바랄 뿐이다. 옛 공화당 지도자들처럼 보다 대통령답게 굴어주기만 원한다. 부시 사망 기사에 숨은 것이 바로 그러한 바람이다. 옛날 미국 대통령들은 어떤 포크를 써야 하는지 정도는 알았으니까.

부시 사망 관련 기사는 예의와 관습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다. 우리가 예전엔 이렇게 훌륭했다며 떠드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생각은 어쩌다 우리가 이꼴이 되었을까, 이다. 트럼프의 예외주의가 이로 인해 끝장나야 한다. 트럼프의 거짓된 행동이 전례가 없으며 예측할 수 없었다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 계급의 믿음이 끝장나야 한다.

세금, 낙태, 투표권, 시민 자유, 테러, 규제 완화 등, 트럼프는 온갖 이슈에 있어 사실상 부시와 똑같은 입장이다. 물론 전부 다는 아니다. 예를 들어 부시가 트럼프 만큼 이민, 무역, 언론인의 권리에 대해 잔인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부시를 거치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부시가 걸프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보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무신론자가 애국자로 심지어 시민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면, 매사추세츠에서 복역하다 일시 출소 기간에 범죄를 저질렀던 윌리 호튼의 사례를 대선 선거 운동에 대대적으로 써먹고 광고까지 만들지 않았다면,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두카키스를 ‘미국시민자유연맹의 열성적 회원’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AIDS로 고통받는 수십만 명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지금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코네티컷의 투자은행가 출신 상원의원 아버지 슬하에서 귀족처럼 자란 부시는 과묵하고 진중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한다는 정치적 태도는 텍사스의 유전에서 왔다. 인종차별적 짐 크로우 법이 기승을 부리던 1948년, 부시는 철저한 계산을 거쳐 텍사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1960~70년대에 일어난 엄청난 정치적 변동을 보여주는 소우주 같은 커리어였다. 이 기간에 공화당은 남부를 기반으로 삼았고 이념적 후퇴를 거쳤다.

부시와 트럼프 집권 사이의 30년을 대충만 훑어봐도, 이런 변화가 부시 시절 강화되었으며 그가 퇴임한 이후에도 빠른 속도로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우파의 이야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경전처럼 떠받드는 낙수 효과라는 주문,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폭동 선동 수사, GI 조 코스프레, 짐 크로우와 합법적 데이트 강간에 대한 노스탤지어 따위다. 수십 년 동안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출연해 온 연극이다. 그들을 의식적으로 섬기는 이들이 보기에 그들의 유일한 장점은 매너가 좋다는 것이다. 상스러운 뉴욕 부동산 개발자 트럼프는 그런 매너를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조지 H. W. 부시를 포함한 공화당 후보들이 늘 내세웠던 약속, 즉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유색인종을 겁주겠다는 말로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는 부시나 미트 롬니 같은 귀족적인 느낌은 없지만, 공화당 지도자는 조지 H. W. 부시가 집권하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맥케인, 롬니, 부시 부자, 트럼프는 돈과 힘을 지닌 아버지의 아들들이며 아버지의 도움으로 여러 번 곤경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트럼프처럼 자기가 자수성가했다는 거짓 주장을 펼친다. 그들 모두는 무모하고 잔인한 행동을 한 전력이 있으며, 맥케인이 오바마는 무슬림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 같은 점잖은 행동도 가끔은 있지만 유권자들의 가장 나쁜 충동을 자극하곤 했다.

진보적 사회 공학으로부터의 ‘자유’와 시민권에 대한 배리 골드워터의 수사를 부시는 커리어 초기에 적극 활용했다. 골드워터는 이민자 출국과 인종 분리 재도입을 주장했던 인종차별 선동가였다. 트럼프의 정신병적 판타지는 골드워터보다 더 괴상할 수도 있지만, 조지 부시의 공민권법 반대보다 더 심한 것도 아니다.

아버지 부시는 트럼프 못지 않게 부정직한 터프 가이 캐릭터 행세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계산에 의한 선동을 펼치는 사람이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부시는 리 애트워터와 로저 에일스 같은 인물과 손을 잡았다. J. 에드가 후버, 리처드 닉슨, 조셉 맥카시, 루퍼트 머독, 매트 드러지 등으로 이어지는 정신병적 염탐꾼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이자 멘토다. 이들은 경박한 불리(bully)들이었고, 패닉 룸을 만들고 거대하고 괴상한 이론을 지어냈다. 그들의 소행이 지금도 매일 암담한 뉴스에 등장한다. 시민권의 상징 서드굿 마샬 대법관의 후임으로 자격도 없고 성희롱을 숱하게 저지른 클래런스 토마스를 임명한 것은 부시가 돌려서 표현한 인종차별적 선언이었다.

레이건은 정치적 지형을 훨씬 더 무례하고 덜 공정한 곳, 악의와 부정직이 더 심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걸 물려받은 부시는 개선보다는 개악을 했다. 그의 유산에 대한 평가에는 그가 의도적으로 인종차별, 계급차별, 종교적 편집증을 이용해 집권했음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는 정치 인생 내내 냉소주의를 고수했다. 온건하고 학문적인 믿음을 가진 척 했지만, 그가 우파를 선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사실 믿음이란 게 아예 없지 않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그의 변명은 ‘비전’이 있다는 것이었다.) 강경 우파 수사를 편리하게 써먹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트럼프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정적과 언론에 대해 괴롭히는 자세를 취했고, 이 역시 미국의 담론에 독이 되었다. 부시의 수사와 조지 틸러 박사를 악마화한 빌 오라일리의 수사, 개비 기포즈 하원의원을 위협한 사라 페일린의 수사는 다 일맥상통한다.

조지 부시는 개인적으로 친절하고 친척 아저씨 같은 매너를 지녔으며, 친밀감있게 고개를 기울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는 자만심에 가득찬 깡패 같고 매너도 나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았다. 물론 트럼프가 훨씬 더 나쁘다. 부시는 도널드 트럼프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이해도 못할 정도의 개인적 품위는 가지고 있었다. 누가 바닷가 모래에 나치 스와스티카를 그려놓았다면 부시는 아마 지웠을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특정 사람들에게만)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러시모어 산(*편집자주: 미국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 4명의 두상이 조각돼 있는 산봉우리.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남서부 블랙힐스 산지에 있다)에는 지미 카터 얼굴만 네 개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이 마침내 다가올 때 이를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이겨야 할 싸움은 트럼프에 맞서는 싸움이 아닌, 트럼프를 만들어낸 현대의 보수주의에 맞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깃발 아래 현대의 보수주의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조지 H. W. 부시가 여기에 실어준 힘이 엄청나다.

부시 사망에 대한 기사들은 꼭 매너를 강조한다.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 때문에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기사들이 많다. 이는 워싱턴이 생각하는 이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치 엘리트들은 결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저지른 사고들을 이후에 수습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이것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트럼프가 미친 피해를 줄이려면 지금 우리는 트럼프가 부시의 유산이나 현대 공화당 정치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생각에 맞서 싸워야 한다.

사람들이 조지 H. W.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는 크게 다르다고 믿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트럼프 같은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하고 그가 꿈꾸는 세상을 가능하게 만들길 원한다. 그들은 공화당 정치인들이 좋은 매너를 가지기만 원할 뿐이다.

공화당원들이 떼지어 늘어서서 자기는 몰랐다, 혹은 더 큰 대의를 위해 편리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혹은 처음부터 속으로 트럼프에게 반대했다는 등의 주장을 해대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워싱턴의 미디어가 말하는 조지 H. W. 부시의 유산을 들먹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성공한다면, 공화당이 부시를 비롯한 매너좋은 공화당 정치인들을 이용해 자신들이 진짜로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한다면, 자신들의 노선에서 트럼프는 피해갈 수 없었던 정점이 아닌 일탈이라고 묘사한다면, 반민주적이고 세계를 위협하는 공화당의 시각은 완전히 뿌리내리게 된다. 트럼프가 탄핵되거나 퇴임하거나 선거에서 패배하면, 그들은 상스럽고 무례한 트럼프에 대한 제정신이고 합리적인 대안 행세를 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 트럼프의 과격하고 권위주의적인 세계관은 사라지지 않고 강화될 것이다.

* 허프포스트US 기사를 번역·수정한 것입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0902a4e4b0bf813ef46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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