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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누구를 위해 예단을 바치나

결혼에 대한 큰 환상은 없었다. 그냥 같이 살다 보니 재미있고 좋길래, 법적으로도 우리 사이를 묶어야겠다 싶어서 한 게 결혼이었다. 돈은 없었지만, 동시에 아무런 기대도 바람도 없었기에 결혼 준비는 무탈하게 이뤄졌다. 근데 그게 가능했던 건, 단지 예비 신랑신부가 로망이라곤 개뿔도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양가 부모의 무간섭과 깊은 이해심도 한몫했다.

모든 결정은 우리가 내렸다. 돈은 생각보다 안 들었고, 퀄리티는 좋았다. 그래서 오만한 생각을 했다. 이렇게 쉽고 싸게 할 수 있는데도 왜 다들 결혼을 할 때 예단이니 뭐니 허례허식을 유지하지? 나처럼만 하면 안 그럴 수 있는데!

 헤헿! 자신만만!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복을 맞추러 간 날이었다. 요리연구가 이혜정을 닮은 직원분께 상담을 받았는데, 그녀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스킬로 나를 살살 녹였다. 그녀는 (결제를 하는 사람인) 나에게 “신부님 어쩜 이렇게 얼굴이 하얗고 이쁠까”라느니 ”신부님 모델인줄 알았잖아. 키가 커서 비단도 더 드는데 이건 완전 바겐 세일이야”라느니 온갖 입발린 말을 다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인데, 유혹에 약해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졸업을 못한 나에겐 더했다. 홀랑 넘어간 나는 네네 제 돈을 다 가져가세요~ 하고 카드를 신나게 긁어버렸다. 그분도 호구 잡았다 하고 신나셨는지 한복 치수를 다 재고 나가려는 나를 붙잡고 ”예단 구경도 하고 가세요” 했다.

몸둘바 모르게 쏟아진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나는 아무렴 물론입죠 하고 콜을 외쳤는데, 그 직원이 추천해 준 예단 보는 집은 바로 근방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뜬금없이 21세기답지 않게 무슨 두꺼운 목화솜 비단이불과 무거워 보이는 숟가락 같은 것들이 갑자기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당황... 긴장...

“신부님, 예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지요?”

갑자기 배우 박상면을 쏙 빼다박은 남자 직원이 내 앞에 앉았다. 전혀 모르고 알 필요도 없지, 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이 아저씨는 나만 보며 말했다.

“이게 참, 예단이라는 것이,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안 한다고 말은 해도 안 받으면 참 그런 거거든요. 누구 집은 어떤 이불을 해왔다, 누구 집은 어떤 은수저를 해왔다, 비단 봉투는 어떤 거다... 참 이게 시어머니들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우리 둘 다 아는 게 없으니 할 말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는 입에 모터가 달린 듯 청산유수로 떠들었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말 나오기 딱 좋은 주제거든요. 누구네 집 며느리는 혼수로 이런 비단 이불을 해 왔다, 누구네 집 며느리는 싸구려 그릇 해 왔다, 이런 것들이요. 분명 안 해도 된다고 말씀은 하셨겠지만, 안 해가면 이제 시어머니 마음이 좀 그렇죠.”

내가 멍때리고 있자 당시 남친이던 남편은 “그럼 저희한테 얼마 부르려고 하셨어요? 가격이요”라고 날카롭게 물었다.

싸나운 공격형 미드필더, 장미반 치타같이 생긴 남자가 그렇게 묻자 그 아저씨는 급 당황한 듯했다.

“아니, 이거 예단 가격은 신랑님이 아시면 안 되는데. 신부님이 해 오는 거니까.”

나만 바라보면서 말한 이유는 저거였다. 아저씨는 싸나운 눈빛을 피하더니 주섬주섬 어떤 종이뭉치를 꺼냈다.

“보통 이 정도입니다. 이건 어머님이랑 오신 신부님들께만 보여드리는 건데...”

그 종이에 그려진 표에는 최저 190부터 최고 420까지 찍혀있었다. 실제로 오늘 카드를 긁고 간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으쓱 하더니

“이 값이면 백화점에서 바세*를 사지” 하고는

″그리고 저희 엄마는 무거운 걸 좀 싫어하세요ㅎ” 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잠시 당황했다. 무거운 이불을 싫어하는 시어머니에게 예단으로 목화솜 이불을 선물하라고 하는 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그는 할말을 찾아낸 듯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상견례 안 하셨다고 했죠? 상견례 하고 나면 다릅니다. 이게 어머님들 마음이 그렇거든요. 실용성과는 달라요. 혹시 신랑님 고향이…”

남편이 짧게 대답하자, 아저씨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음흉한 함박 미소를 지으며 그 아저씨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신부님, 경상도면요, 지금 신랑님이 이렇게 말씀하셔도 100% 이불 반상기 수저, 아니면 그 이상 예단 준비 하셔야 해요. 경상도 어머님들은 제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 미운털 제대로 박혀요. 하하”

그 말에 남편이 다시 공격형 미드필더의 눈빛으로 돌아오자, 그 아저씨는 입가에서 웃음을 조금 거뒀다.

“안 하면 동네 이모님들 고모님들끼리 말 나오기 딱 좋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다음에 오시면 분명 하시게 될 겁니다.”

경상도에 대한 일반화를 멈춰주세요... 결국 예단 안 했는데 세상천지 그 누구도 뭐라 안 했단 말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막혔다. 꽉 막힌 도로에서 우리는 신나게 그 아저씨를 씹었다. 결국 예단을 하라는 이유가 시어머니한테 미움 사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거 말고 합리적 이유가 하나도 없네! 비단은 무슨 얼어죽을 비단. 그 돈이면 바세* 사지!

그 와중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어머님과 몇 번 만나보지 않았고, 어머님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저 아저씨한테 예단 상담을 받았다면?

“미운털 박힌 며느리가 되는 거예요. 시어머니들 마음이 그렇거든요. 고향이 경상도세요? 그럼 100%, 아니면 그 이상 하셔야 합니다.”

대체 뭐가 그런지도 모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420만원을 긁은 주인공이 내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커플들은 상견례 전까지 양가 부모님을 한 번도 안 뵙기도 한다. 그리고 만났더라도, 시어머니가 그렇게 확신을 주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좋은 분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좀 어려운 시어머니… 정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예단 하지 말라고 하셔도 준비해야 하겠지? 아니 잠깐 근데 요만큼만 하면 미움받는 며느리가 된다고요? 어머님 입장에서는 그럴려나…? 하다 보면 막 400만원이 긁혀있고...

완벽한 공포 마케팅이었다.

허례허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함부로 생각한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이런 허례허식이 지속돼 온 것엔, 며느라기에 들어선 예비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의 미움’이라는 아주 극악한 공포를 심어주는 방식도 한몫했을 터였다.

그 날 이후로 해당 업체에서는 나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예단을 안 해가면 시어머니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경상도 출신 고모 이모들한테 뒷말 나오고 미운털 제대로 박혀서 시어머니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안 해가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일말의 가능성이라, 예단을 해 가도 시댁에서는 싫어할 수도 있고 안 해가도 좋아할 수도 있다.

근데 중요한 건, 예단을 안 하면 관련 업체는 100% 아니 그 이상 엄청 싫어한다. 그거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누구를 위해 예단을 바치나?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9da33ce4b0bc0daca57b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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