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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박나래 시대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는 매월마다 다양한 브랜드의 평판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리포트를 발표한다. 예능방송인도 그중 한 분야다. 그리고 지난 4월 6일에 발표한 예능방송인 브랜드 분석 결과 평판지수 1위를 차지한 건 박나래였다. 김종민, 이영자, 유재석, 강호동 등의 이름이 차례로 이어졌다. 박나래가 이 분야에서 1위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18년 10월, 11월에도 1위를 차지했다. 2018년부터 꾸준히 10위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지금 박나래는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나래가 개그맨으로 데뷔한 건 2006년이었지만 처음으로 대중적인 반응을 얻게 된 건 2011년 KBS <개그콘서트>에서 진행한 코너 ‘패션 No.5’를 통해서였다. 장도연, 허안나와 함께 출연한 이 코너에서 다른 두 출연자보다 과하게 눈에 띄는 의상이나 아이템을 입고 나오며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실질적으로 이 코너에서 재미를 책임지는 건 박나래였던 것이다. 장도연, 허안나보다 훨씬 키가 작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역할을 자처했다. 대부분의 개그 코너들이 타인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상대를 바보처럼 몰아가는 방식으로 객석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과 달리 자기 희생적인 개그를 통해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2012년에는 지상파 방송사에 출연하는 개그맨으로서 이례적으로 tvN의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하게 됐는데, 어쩌면 개그우먼 박나래를 확실히 알린 신호탄이라 할 수 있는 분장 개그를 선보이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분장을 통해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외모와 행동을 복사하듯 따라하는 박나래의 모습은 유머를 넘어 굉장한 볼거리에 가까웠다. 덕분에 분장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박나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간복사기로서의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장도연과 함께 출발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분장을 주제로 한 방송을 진행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공중파 방송국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위의 센 개그를 펼치며 방송 본방이 아닌 온라인 생방송을 본 관객의 호응이 상당했다. 

사실상 오늘날의 박나래를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의 제목은 본래 2013년 2월 10일 설날 특집으로 기획된 파일럿 프로그램 <남자가 혼자 살 때>를 정규 편성하며 지어진 것이었다. <나 혼자 산다>의 멤버를 의미하는 무지개 회원 역시 초기 파일럿 시절에 출연한 7명의 남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나 혼자 산다>에 박나래가 합류한 건 2016년 무렵이었다. 당시 동시간대에 SBS에서 새롭게 선보인 <미운 우리 새끼>에 밀려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현무, 박나래, 한혜진, 이시언, 기안84, 헨리 등을 필두로 고정출연자 라인을 정비하고, 출연진의 매력과 ‘케미’를 어필하며 시청률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2017년 이후로 MBC를 대표하는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전현무와 한혜진의 결별 사실이 알려진 뒤 두 사람이 잠정 하차를 하게 되면서 전현무와 한혜진의 빈 자리를 남은 멤버들이 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박나래의 존재감을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전현무와 한혜진의 하차는 주요한 역할을 하던 캐릭터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프로그램에 타격을 주는 사건이기도 했지만 진행을 주도하며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던 전문MC로서 전현무의 빈 자리를 당장 채울 수 없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답도 확실했다. 기존의 출연진 중에서 전현무를 대신해 이시언, 기안84 등 상대적으로 방송 경험이 적은 이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진행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박나래 뿐이었다.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의 빈 자리에 앉게 된 박나래는 우려와 달리 원만하고 능숙한 진행을 통해 MC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현재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 예능방송인의 경력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하루하루가 막막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 무명 시절이 계속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를 알아 봐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최근 유명한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캠페인 모델로서 공식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나래가 남긴 말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올린 이들 대부분에게는 고난과 불안으로 점철된 시작점이 있기 마련이다. 박나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남성 위주의 쏠림 현상이 심한 예능방송계에서 개그우먼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예능방송계에서 대세라 불릴 만한 여성MC로 떠오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마 이영자 혹은 박미선 정도?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남자 출연자 전부 혹은 남자 출연자 다수에 여성 출연자 한두 명 정도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 안에서 간헐적으로 주어지는 한두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결코 만만할 리 없다.

 

박나래가 유재석, 전현무,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등 쟁쟁한 남성 방송인들을 제치고 예능방송인 브랜드 평판지수 1위를 차지한 건 대단히 놀라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둘러싼 환경의 삭막함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예능방송인 브랜드 평판지수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여성 예능방송인은 박나래와 이영자뿐이다. 50위까지의 순위 안에 이름을 올린 여성 예능방송인도 9명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 방송인이 출연할 만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처럼 기획되지 않거나 여성 방송인에게 출연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적기 때문이다. <1박2일>도, <무한도전>도, <라디오스타>도, <미운 우리 새끼>도, <신서유기>도, <아는 형님>도, <집사부일체>도, 웬만큼 인지도가 있는 예능 프로그램 대다수의 고정 출연자는 한결 같이 남자 방송인들이었다. 대부분의 여성 출연자는 1회성으로 등장하는 게스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나래에게 주어진 기회도 대부분 그런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보여줌으로써 대중에게 각인되는 존재로 거듭났다.

지난 2018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건 이영자였다. 당시 박나래도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올해의 예능인상을 받는 데 그쳤다. 수상 전 인터뷰에서 이영자는 “진정한 대상은 박나래”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영자는 한동안 무대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독보적인 경력을 가진 방송인이었다. 이영자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무도 없었다. 무대의 중심을 장악한 방송인이라 불릴 만한 여성 예능방송인은. 그리고 박나래가 나타났다. 이영자 이후로 예능방송계의 원톱 스트라이커가 될만한 여성방송인이 오랜만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박나래는 독한 분장이나 수위가 센 사연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존재가 아니다. 대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얼간이들을 담당하는 남자들을 이끄는 리더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2019년의 말미가 다가왔을 때 어김없이 기획될 다양한 결산에서 박나래라는 이름이 올해의 인물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지 않은 지금도 이미 그럴 자격은 충분하다.

‘매일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재편집했습니다.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b437b3e4b05ed55a3558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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