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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형제자매로 산다는 것

지난 4월 1일 <안녕하세요>(한국방송2)에서는 모범생 딸이 중학교 입학 직후 자퇴를 선언했다는 한 어머니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단순한 사춘기 반항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딸은 자퇴 후 홈스쿨링과 검정고시로 중학과정을 마치고,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하겠다는 계획표를 보여주었다. 입시를 향한 소녀의 부담감이 너무 큰 탓인가 싶은 순간,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는 어머니가 서울대학교 특수교육과 진학 계획까지 세워둔 채 면담에 왔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과도한 교육열로 인한 모녀 갈등인가 싶던 참에, 예상 밖의 사연이 튀어나왔다. 소녀의 오빠는 중증발달장애아였다. 소녀의 사연은 발달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이들이 겪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장애를 논할 때 간과되기 쉬운 ‘비장애 형제자매’의 이야기가 가시화된 순간이다.

영화에도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말아톤>에서 초원이 동생 중원이는 “한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 있어? 난 반항이라도 하지. 쟤는 뭐야?”라는 말로 엄마의 일방적인 모성을 자성케 하였다. <길버트 그레이프>와 <검은 땅의 소녀와>에서 주인공들은 자기 삶도 책임지기 버거운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형제자매를 떠안은 채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다가 힘든 결단을 내린다. <스탠바이, 웬디>에서 오드리는 발달장애인 동생을 잘 돌보아 왔지만, 엄마가 죽고 딸이 태어난 뒤 동생을 지역자활센터에 보내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장혜영 감독이 18년간 시설에서 살아온 발달장애인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정착기를 담고 있다. 장혜영 감독은 스스로를 ‘생각 많은 둘째언니’로 부를 만큼 ‘발달장애인의 언니’를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장애인 형제자매는 떼어버릴 수 없는 삶의 조건이지만, 이들에게도 온전히 나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순간이 필요하다.

케이트 스트롬의 책 <장애아의 형제자매>에는 ‘비장애 형제자매’의 심리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완벽하고 이상적인 아이가 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가뜩이나 힘든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혼자서 잘하는 아이가 되려는 강박에 휩싸인다. 장애인 형제자매와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일까 봐 특이한 행동을 삼가는 자기검열을 하고, 형제자매를 돌보거나 단속하는 보호자 노릇을 해나가며 자신이 정말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지 혼란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형제자매를 부끄러워하거나 짐스럽게 여기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형제자매는 못하는 일을 자신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낀다. 이들은 부모의 관심이 온통 형제자매에게 쏠리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런 이해가 당연시되는 상황에 억울함이 쌓인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감정은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말아톤>에서 보았듯이, 장애인과 사회의 갈등이나 장애인과 부모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이들이 느끼는 분노, 우울, 당혹감, 두려움, 죄책감 등은 주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란 이름의 모임이 있다.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이 각자 경험을 나누는 자조모임이다. 2016년부터 ‘손이 덜 가는 아이’로 자라기 위해 분투하며 정서적 결핍과 분열에 시달려온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모임을 만들고,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속내를 털어놓는 ‘대나무숲 티타임’을 가졌다. 그때의 대담과 각자 쓴 에세이를 엮은 책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도 출간하였다. 책에는 누구보다 반듯하게 자란 이들이지만, 형제자매와 부모에게 품은 양가감정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또한 장혜영 감독의 책 <어른이 되면>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발달장애인의 언니로 살면서 느꼈던 디테일한 고민들이 영민한 문장 속에 잘 기술되어 있다.

<안녕하세요>의 소녀는 위에 언급된 책들에 나오는 ‘비장애 형제자매’의 고민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모범생 콤플렉스’를 지닌 채 오빠를 돌보고, 엄마의 자존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명문대에 진학해 특수학교 교사가 되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놀고 싶고, 마카롱 가게 주인이나 예능 피디가 되고 싶다는 또래다운 꿈을 꾼다. 엄마와 오빠를 사랑하기에, 힘들다는 감정은 사치이거나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 장애인 형제를 둔 신동엽의 사려 깊은 질문으로 소녀의 억눌린 감정들이 조금씩 풀어져 나오고, 이영자의 통찰력 있는 질문으로 엄마가 딸에게 가해온 압력과 모순된 욕망을 깨닫고 눈물을 터뜨린다. 성공적인 상담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기적의 순간이다.

흔히 장애인의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를 떠올린다. 하지만 ‘비장애 형제자매’들도 복잡한 갈등을 느끼며, 자신을 장애인 형제자매의 최종적인 보호자로 여긴다는 점에서 장애문제의 당사자이다. 이들의 존재에 주목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엄마의 헌신주의로 대표되는 시혜와 동정의 시각이 아니라, ‘나는?’ 이라는 문제의식을 통해 나 자신의 결핍을 돌아보면서 장애인들과 시민적 연대를 이루어나가는 평등의 시각으로 관점이 전환되기 때문이다. “우선 네가 행복해야 돼”라는 출연자들의 조언처럼, 더 많은 지지가 ‘비장애 형제자매’들에게 이어지길 바란다

 

글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a86437e4b0dca03301c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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