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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의 독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지금의 여성 예능인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

박나래는 요즘 9개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하면서 예전의 센 인상을 벗고 다채로운 이미지로 확장하며 변신 중이다. 사진은 박나래가 출연 중인 티브이엔 <미쓰 코리아>의 방송 장면.

확실히 최근 박나래의 행보는 한창때의 김구라나 전현무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준다. 새로 론칭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일단 박나래를 캐스팅하고 보고, 박나래는 대체로 그 기대치에 부응한다.

티브이엔(tvN)이 새로 론칭한 <미쓰 코리아>에서도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요리 대결을 지휘하는 박나래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고, 문화방송(MBC)의 <구해줘 홈즈> 또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오랜 시간 자취해온 박나래의 풍성한 경험에 많은 부분을 빚졌다.

워낙 다작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기사도 등장했다. “지금의 행보에 대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워낙 수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다보니, 이미지 소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일요일 하루에만 무려 4개의 프로가 몰려 있다보니 ‘채널만 돌리면 박나래’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닐 정도다. 그녀의 유쾌한 웃음을 오래 공유하고 싶은 이들로선 당연히 혹사에 가까운 출연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한다.”

박나래가 너무 빨리 소진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오마이뉴스>의 기사 ‘TV만 틀면 나오는 박나래의 독주…이대로 괜찮을까’(2019년 4월2일, 김상화 시민기자)가 출고된 지난 2일,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난의 주된 분위기는 한결같았다. “별걸 다 걱정한다. 김구라랑 전현무가 그럴 때는 걱정 안 하더니.”

물론 김상화 시민기자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기사는 일요일에만 4개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고 도합 9개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박나래의 이미지가 너무 빠르게 소진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실내 프로그램만 하는 게 아니라 야외 버라이어티, 공개 코미디, 토크쇼 등 장르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박나래의 강행군을 염려한다.

기사가 근거로 든 사례들도 일견 납득이 간다. 박나래가 일정 조율에 실패해 티브이엔 <짠내투어>나 제이티비시(JTBC) <스카이머슬>에서 종종 자리를 비우는 모습을 보여줬던 사례들은 그의 혹사를 걱정할 만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이미지 소비가 과한가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박나래는 오히려 더 많은 프로그램을 거치며 이미지가 확장된 케이스가 아닌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만 하더라도 박나래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분장쇼와 ‘활력댄스’처럼 한눈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센 개인기로 승부를 걸었다. 덕분에 열광적인 환호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그 색깔이 너무 세고 독하다는 이유로 그를 꺼리는 이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박나래의 전성시대 같다. 그는 요즘 9개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하면서 예전의 센 인상을 벗고 다채로운 이미지로 확장하며 변신 중이다. 사진은 박나래가 출연 중인 티브이엔 <미쓰 코리아>의 방송 장면(왼쪽)과 문화방송 <구해줘 홈즈>의 프로그램 포스터.

그러나 요즘의 박나래는 공을 섞어서 던질 수 있게 됐다. 자신이 어떻게 일상을 사는지 차분히 보여줄 수 있는 문화방송 <나 혼자 산다>와, 호스트로서 게스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를 부각시켜 주는 토크쇼 엠비시 에브리원(MBC every1) <비디오스타>라는 플랫폼을 경험한 덕분이다.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자신의 모습을 더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게 되자, 센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이미지를 확장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박나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 보자고 결심한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박나래는 없었으리라.

돌이켜보면 아주 오래 한국 예능의 압도적 일인자로 군림한 유재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독한 카메라 울렁증으로 오랫동안 기회를 얻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국방송(KBS) <서세원쇼> ‘토크박스’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뒤부터 그에겐 잦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토크쇼와 게임쇼, 연예 정보 프로그램 리포터와 시민참여형 야외 예능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시청자를 설득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갈고닦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화방송 <무한도전>과 에스비에스(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으로 요약할 수 있는 ‘유재석식 오합지졸물’ 장르 또한 2003년 한국방송 <일요일은 즐거워> ‘천하제일 외인구단’, 2004년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 ‘유재석과 감개무량’ 등의 실패 끝에 자리를 잡았다.

더 많이 기회를 얻는다는 것, 심지어는 종종 실패했음에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세상에 첫선을 보일 때부터 완벽한 기량으로 등장하는 방송인 같은 건 없으며, 천하의 ‘유느님’ 또한 많은 기회와 시행착오 끝에 우리가 아는 유재석이 된 거니 말이다.

여성 예능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하던 방송계도 조금은 달라지는 분위기다. 많은 이들이 여성 방송인들에게 기회를 주라고 외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여성 예능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변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드는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과 최근까지도 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예능 섭외라면 한사코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남성 연예인들이 거친 농담을 하고 슬랩스틱을 선보이며 망가질 때에는 대부분의 시청자가 그것을 캐릭터 연기로 이해하고 환호하지만, 여성 연예인이 비슷한 활약을 펼치면 댓글난이 “너무 나댄다” “비호감이다” “시끄럽다”는 식의 악성 댓글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주말 예능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한국방송 <해피 선데이> ‘여걸식스’(2004~2008) 또한 댓글난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더 가혹한 분위기 속에서 굳이 앞장서서 망가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능의 남초 현상을 부추겼다.

지난해 10월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 참석한 박나래와 김숙

그러나 그 결과로 예능판의 남초 현상이 심해지자,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인식도 이동했다. 그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은 왜 예능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걸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엠비시 에브리원은 왜 약속과 달리 <무한걸스>(2007~2013) 다음 시즌을 내지 않는지 묻는 이들, ‘여걸식스’를 견인했던 그 많던 여성 예능인들이 왜 더는 방송을 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런 환경 속에서, 송은이와 김숙이 광야에서 개척한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김숙의 발견과 이영자의 재발견, 박나래의 질주는 모두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라고, 망가지고 구르고 거친 농담을 던지는 모습도 멋지니까 더 많은 기회를 허락하자고 이야기한 시청자들이 사회적 인식을 함께 바꿔 나간 결과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덕분에 이제 티브이를 보는 게 전보다 덜 고단하다. 한동안 남성 예능인들 가운데 둘러싸인 채 방송을 만들던 유재석은 에스비에스 <미추리 8-1000> 시리즈에서는 동수의 성비로 구성된 플레이어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저돌적으로 망가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승부욕의 화신 손담비이고, 토크에 기름칠을 하며 분위기를 예능으로 견인하는 역할은 양세형과 장도연이 나란히 나눠 가지고 간다. 성비에 균형이 맞으면서, 여성 연예인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더 많이 망가져도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쇼에 임할 수 있게 됐다.

아예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들은 어떤가. 올리브(Olive) <밥 블레스 유>의 멤버들은 서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방송에서 더 과감한 농담이나 솔직한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남성 예능인들이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한국방송 <해피 선데이> ‘1박2일’이나 문화방송 <무한도전> 등을 통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멤버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처럼, 여성 예능인들 또한 이제야 그런 기회를 다시 얻기 시작한 셈이다.

박나래의 다작을 걱정하는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이 전에 없이 박나래 편인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물론 다작을 하다 보면 가끔은 실패하는 작품도 있을 것이고, 이미지 확장이 정체되는 순간이 오기도 할 테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청자들이 보내는 시그널이 무엇인지는 선명하다. 설령 그래도 좋으니 더 확신을 가지고 달려도 좋다고 말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여성 연예인들이 더 구르고 망가지다 실패해도 다시 다음 기회를 허락할 준비가 됐다. 그 시그널을, 이제 모두가 읽을 때가 됐다.

 

글 이승한 TV칼럼니스트

기사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a8637ee4b0a00f6d400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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