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글 쓰기에 소질이 없는 이과생이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늦은 새벽 작성하여 읽기에 더욱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4월 16일의 비극적인 사건
#세월호 #6년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약 6년이 되었다. 6년의 시간이 지난 후,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간단하게 나마 기억해보려고 한다.


세월호 사건, 4월 16일의 비극적인 사건
기울어진 세월호

세월호 사건은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던 우리나라의 안전 관리의 현실과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정부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였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집권하던 박근혜 정부는 물론 한국의 경제계, 사회계, 정치계, 그리고 문화계까지, 모두 엄청난 후폭풍,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리게 된, 그 이후 박근혜 탄핵까지 일어나게 된 원인이기도 한 사건이다.

출발

지금의 나와 나이가 같아져 버린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들뜬 마음으로 부모님께 다녀올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으며, 6시 30분 출항할 예정이었던 배가 안개로 지연되어 9시에 안산 단원구 학생 325명, 교사 14명, 선원 26명 등 459명과 차량 180대, 잡화 등 화물 3천608톤을 싣고 세월호는 출항했다.

침몰

세월호 사건, 4월 16일의 비극적인 사건
8시 48분 부터 배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살려주세요!!

여기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최덕하군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

단원고 학생들의 생존율은 불과 23 퍼센트. 이는 일반 승객에 비해 턱없이 낮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승객들은 안내 방송을 듣고 침몰 중임을 직감하고 자체 판단을 해서 생존 대책을 강구하였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안내 방송을 믿고 따른 교감 및 각반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해 침몰 직전까지도 학생 대부분이 꼼짝 안 하고 객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구명조끼를 입고 객실 안에서 대기할 때, 배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 받거나,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번 생각해보라, 항상 어른의 말만 들어온 착한 학생들이 이러한 위기 상황에 안내 방송을 믿을까? 아니면 자신의 육감을 믿을까? 당연히 전자이다. 나는 이를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탈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어떨까. 생존율이 그럴 경우에도 고작 20프로 남짓일까?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후

세월호 사건, 4월 16일의 비극적인 사건
사건 주요 인물들

결국 나와 같은 나이의 많은 학생들이 하늘의 별들이 되었고 지금도 우리의 밤 하늘을 환하게 비춰주게 되었으며, 살아남은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무능한 당시 정부와 일부 어른들의 무책임함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4월 16일, 오늘 하루 만큼은 하늘의 별이 되어준 학생들을 생각하며 추모해주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써보았다. 이 글을 읽은 모두가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며 옳바른 국민이, 생각하는 시민이, 또 책임있는 어른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여기를 참고해보면 좋다.